계층이동과 교육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우리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식 세대가 계층을 상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노력하고 용 써도 계층 이동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활력이 떨어지고 젊은이들은 무력감에 빠진다. 우리 젊은이들이 정규직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들은 결혼할 때 양가 부모로부터 전셋집 정도를 지원받을 수 없다면 죽을 때까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채 ‘헬조선’을 외치며 절망한다. 계층 이동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던 교육마저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니 중하위 계층의 좌절감과 박탈감은 매우 심각하다. 계층이동 통로와 사다리에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는가.

구한말 상류층은 항일이나 반일로 완전히 몰락하거나, 경제력과 친일로 자녀에게 신식 교육을 시켜 부와 권력을 더욱 확고하게 세습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의 자녀는 동경이나 미국 등에 유학하고 나서 해방 전후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을 형성했다. 서얼, 중인의 자녀, 향리, 변방 지대 사람들 중 일부는 식민지 교육을 받았고, 그들 상당수는 하층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항일 전선에 몸을 던졌지만, 상당수는 식민지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동족을 괴롭히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다. 양반이라는 권력이 누리는 특권과 횡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조국의 해방보다는 목전의 이익, 일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해 일제에 협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6·25로 인한 완전한 폐허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각개 약진의 기회를 제공했다. 동란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사회 경제적 지위를 바꿀 수 있었다. 근면 성실하고 두뇌가 탁월한 사람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자신의 계층을 끌어올 릴 수 있었다. 전후의 혼란과 5·16 쿠데타에 이어 압축적인 고도성장 과정에서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보다 손쉽게 계층을 이동할 수 있었다. 가장 공정하면서도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계층이동 수단은 교육이었다. 전후 베이비 붐 세대들은 수도권 명문대와 지방 거점 국립대, 심지어 지방 사립대를 졸업해도 어렵지 않게 관료나 대기업 정규직원이 될 수 있었다. 서울대와 소수의 명문대학은 출세와 계층이동의 상징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다이내믹한 활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요인은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과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계층이동의 통로와 사다리는 종전과 같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부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부에 의해 출발선이 달라졌다.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다수의 젊은이들에겐 파트타임의 ‘알바 인생’이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던 2010년을 전후해서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은 계층이동 통로나 사다리를 전과 같이 작동하지 않게 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과고, 외고, 전국 규모의 자사고 출신 학생에게는 특혜에 가까운 어드벤티지를 주었다. 정치인, 언론인, 교수, 법조인, 의사, 재력가 등 부와 지식, 권력의 최상위권에 위치한 사람들은 기득권을 활용하여 품앗이 인턴, 논문에 이름 얹기, 귀족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흙수저가 넘볼 수 없는 스펙으로 자녀를 최고 명문대나 의치대 등에 보다 수월하게 진학시킬 수 있었다. 이때부터 흙수저는 계층 이동을 위해 답답하고 좁은 긴 통로를 통과해야 했고. 보다 길고 높고 부실한 사다리를 타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곡예를 해야 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객관식 문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중산층은 특권과 반칙보다는 투명성과 신뢰성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수능에 의한 정시모집을 선호한다. 곧 발표될 대입제도 개편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를 당국은 알아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과 좁아진 계층이동의 통로를 넓히고 부러진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는 대입제도 개편안이 나와야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에게는 아직도 교육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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