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 이장희



무덤.

한 사람의 희로애락을 다 묻고 간다고 해서 무덤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산 위의 웅장한 고분도 그 속에 품고 있는 사연은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내음 향긋한 숲길, 주위가 고즈넉하다. 녹색 이끼가 피어있는 돌계단에서 천년의 흔적이 묻어난다. 십여 분 걸었을까, 잡풀이 무성한 고분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어느 왕조의 서글픈 유물처럼. 주위에는 두꺼운 갑옷을 입은 아름드리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마치 적의 위협으로부터 주군을 지켜주려는 호위무사들처럼.

6세기경에 축조된 가야지역에서의 유일한 벽화고분. 고령 고아동벽화고분(高衙洞壁畫古墳)(사적 제165호)이 대가야읍 남쪽, 인적 드문 나지막한 산등성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주산(主山)의 높은 능선 위에서 천하를 호령하듯 내려다보고 있는 지산동 고분과는 1㎞ 정도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어느 누구의 침입도 받지 않으려는 듯 입구는 녹색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철문 옆에서 마치 수문장처럼 부동자세로 서있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옛 대가야 무덤인 돌덧널무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고아동벽화고분은 굴식 돌방무덤이다. 합장(合葬)을 하기 위해 만든 무덤으로 요즘 납골묘와 닮았다. 굴식 돌방무덤은 돌로 널을 안치할 수 있는 방을 여러 개 만들고, 그 위에 천장돌을 얹고 흙을 덮어 봉분을 올린 것이다. 천장은 돌이 서로 맞물리게 하여 위로 갈수록 점점 좁혀지면서 활과 같은 곡선 모양으로 만들었다. 바깥의 뜨거운 열이나 습기가 침투하여 내부가 부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얀 석회를 벽과 천장에 두껍게 칠했다.

고분 속에 연도를 만들어 이승과 저승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삶과 죽음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죽어서도 인간 세상과 교류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인 영통(靈通)과 혼교(魂交)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벽과 천장에는 연꽃을 그려 놓았다. 고분 주인의 내세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벽에 그려놓은 연꽃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지금은 널방 천장에 1개의 연꽃 그림이, 널길 천장에 11개의 연꽃 그림만이 선명하게 보일 뿐이다. 널방 동쪽에는 아내의 관, 서쪽에는 남편의 관이 사이좋게 나란히 놓여 있다. 부부가 누워있는 남북으로 수로(水路)도 파 놓았다. 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백제 무령왕릉과 흡사 닮은꼴이다.

남아있는 유물은 거의 없다. 수차례 도굴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청동과 쇠못, 인골과 토기 조각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고분의 하단을 두르는 돌과 봉토 사이에서 대가야 토기가 출토되었지만, 이 토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봉토할 때 흙에 섞여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고분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 왜 백제 양식의 고분이 대가야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을까.

크기와 규모로 봐서는 왕족의 고분일 것 같다. 만약에 고분 주인이 대가야 왕족이 아니라면, 대가야와 군사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인질로 잡혀 온 백제 왕족의 무덤은 아닐까. 젊은 나이에 인질로 잡혀 온 그는 대가야 왕족 여인과 정략결혼까지 했지만, 그는 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살았을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오직 믿고 의지할 사람은 아내밖에 더 있었겠는가. 늘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이는 이곳에서 그의 몸과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고향이 그리울 때는 따뜻한 어머니 품이 되어주고, 외로움에 몸부림 칠 때에는 곁에서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아내.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는 생사를 함께한 동지였던 그녀가 있어 삶에 얼마나 위로가 되고 든든한 방패가 되었겠는가.

당신 옆에 아내의 쉼터를 마련해 두었다. 쉼터에는 온통 연화문(蓮花紋)으로 치장했다. 간난의 세월을 함께한 아내와 극락왕생을 하기 위해서 일게다. 쉼터 옆에는 남북으로 수로도 파 놓았다. 수로에 물이 차면 아내와 함께 배를 타고 영혼이라도 그리운 고국인 백제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 가서 아내와 이제라도 고통 없는 삶을 살고 싶었을 게다.

고아동벽화고분은 이제 새 삶을 시작하는 부부의 둥지이자 연화장 세계였다.

‘부부는 사랑의 주름살 속에 산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밭고랑같이 깊게 파인 주름살 속에는 평생을 함께한 부부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평생의 반려자라 하는가 보다. 부부의 연을 지탱해 준 힘은 그 간난의 세월이 주름살 속에 사랑으로 온유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분 옆에 누워본다. 이름 모를 부부의 천년의 사랑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려오는 것 같다. 한 쌍의 뭉게구름이 하트를 그리고 있다.

*‘천년지애’는 SBS TV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제목에서 인용.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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