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를 하며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최명란

이십 년 넘게 몰던 차를 폐차한다/ 그를 폐차장에 버리고 돌어서자 비가 내린다/ 한 음 내리지 않으면 부를 수 없는 노래처럼/ 끼익끼익 있는 대로 음을 높여 소리 지르기도 하고/ 가래 걸린 목구멍처럼 꺼억꺼억 숨이 차오르기도 하는 그를/ 그래도 사랑하는 일은 폐차장에 버리고 돌아서는 일이다/ 걸핏하면 시동을 꺼뜨리는 횡포를 일삼았고/ (중략)/ 속도위반 신호위반 주차위반으로 밀린 과태료가 백만 원이다/ 사회의 동의 없이 숨어서 지은 내 죄값이 고작 백만 원이라니/ 이십 년 저지른 그 많은 위반의 죄값치고는 제법 싸다/ 폐차장에 그를 버리고 비를 맞으며 돌아서는 길/ 납작하게 눌린 쥐포처럼 한 장 뼈만 남기고 간 그에게서 비로소/ 냉담히 맞서다가 뜨겁게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 시집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랜덤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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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다니던 차를 폐차시킨 지 두 달이 넘었다. 폐차가 처음은 아닌데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 전에는 폐차하고 다음 차를 마련할 때까지 잠시 차 없이 지내긴 했지만 두 달 지나도록 차량 무 보유 상태는 처음이다. 지난 9월초 운전경력 33년 만에 처음으로 앞차를 들이받는 추돌사고를 낸 게 폐차의 직접원인이었다. 앞차가 갑자기 속력을 줄여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완벽한 제동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피차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는데 나중에 보험사로부터 통보받은 대인대물 보상액이 9백여만 원이란다. 어이없었지만 100% 책임을 졌다.

자차보험에 들지 않은 내 차의 수리비도 만만찮을 것이다. 게다가 보름 뒤면 보험갱신일이다. 그리고 이젠 내 운전 실력도 믿을 바가 못 된다. 단박에 폐차를 결심했다. 폐차를 할까 말까 망설일 때 먼저 고려해야할 사항이 지금 내게 차가 꼭 필요한지이다. 출퇴근할 것도 아니고 가족나들이할 일도 없으니 당연히 필요치 않다. 무임전철과 버스로 웬만하면 해결이 된다. 다음은 그럼에도 차를 가져야할 체면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정도일 것이다. 또한 차에 대한 애착이 그다지 있는 편도 아니다. 아무튼 이미 답은 나왔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철가격 40만 원에 20만 원을 더 보태어 ‘속도위반 신호위반 주차위반으로 밀린 과태료’를 처리했다. 삼년 남짓의 죄값치고는 비쌌다. ‘쓰러지는 법’의 대가를 제법 호되게 치렀다. 다행히 ‘BMW’족에 편입되고 두 달이 넘었는데도 큰 불편은 모르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는 습관을 생활화한지도 꽤 된다. 어디 멀리 가거나 할 때 차가 정 필요할 경우 렌트하면 될 일이고 생활 속에서 걷는 습관이 일상화되었다. 1,2,3 운동이란 게 있다. 1은 ‘버스 한정거장은 걸어가기’, 2는 ‘2km까지는 걷기’, 3은 ‘3층까지는 계단으로 걸어가기’이다.

그런데 나는 대체로 1,2,3 레벨을 상회한다. 정거장 간 거리에 따라 다르겠으나 바쁘지 않으면 버스 두 정거장 거리는 걸어간다. 달리 운동이라고 하는 게 없으므로 하루에 3km는 늘 걷는다. 내 사는 곳이 승강기 없는 집의 4층이므로 매일 4층 계단을 오르내린다. 지하철에서도 가급적 계단을 이용한다.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운동습관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하루 평균 1만보는 거뜬하다. 만보계 기록을 유지하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걷는 동안 전에 그냥 지나치던 것들과도 마주하고 ‘방하착’도 생각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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