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 윤미영



안동 서후면의 아침은 황금빛 바다다. 순한 햇살이 들녘을 비추면 기지개를 켠다. 사람들은 추수 날을 손꼽으며 숱한 고비에 허리가 굽었다. 그날까지 무탈하기를 비손한다. 봄 파종 이후 잠을 설치며 애타게 기다림은 정점을 향한 안간힘이다. 풍요로운 들녘을 두리번거리는 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은 고요하다.

두 갈래의 갈림길 위에 섰다. 왼쪽은 세계문화유산인 봉정사, 오른쪽은 개목사開目寺 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는 차도 걸음도 잠시 멎지만 머뭇거리지 않는다. 마음은 K 작가의 <향내 품은 툇마루> 라는 글향을 따라 앞서가고 있다. 길은 끝없이 유연한 가지를 뻗어서 열어준다. 투박한 발자국 소리에 먹이 찾던 어미 새가 놀랐는지 푸드덕 날아오른다.

갈빛의 숲은 깊어진다. 산기슭을 돌 때마다 절정을 맞은 붉은 단풍의 자태가 고매하다. 날갯짓에 는개비 낙엽비가 흩날리며 몸을 떤다. 나뭇잎들이 무대에서 내려올 시간이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때를 맞추어 발레리나의 발끝처럼 사뿐하다. 미련과 집착도 이미 떨쳤다. 몸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소란스레 물을 필요가 없다. 발끝을 곧추세워서 수없이 딛고 차올랐을 봄의 비상과 여름내 쏟았던 푸른 열정을 기억한다. 낙엽이 피멍 흥건히 배인 발을 닮았다. 자연 속에서는 제각기 맡은 배역을 말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는 길을 잃고 헤매어도 좋겠다. 몸을 쭉 늘이고 낙엽수 사이를 오가면 나도 숲 사람이 되려나. 낙엽의 구수한 향기에 눈과 귀가 맑아진다. 여태 개목사의 용마루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툇마루의 향내는 언제쯤 맡을 수 있을까. 귀한 것일수록 그리운 것일수록 마음의 애를 태운다는 말이 맞다. 이정표가 없는 길이다. 얼마나 남았는지 더 지치기 전에 오르막 그루터기에서 쉬어간다.

마을이 저만치 엎드려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래전 극심한 눈병이 역병처럼 돌았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눈을 잃었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별빛만 반짝이는 마을에 한숨소리, 허리 굽혀 길 찾는 소리에 귀를 세운다. 갑자기 만난 갈림길에선 여지없이 길을 잃고 넘어지고 아우성이다. 눈먼 자들의 동네로 변해갔다. 마을의 고샅마다 생사의 소릿길이 생겼다. 변주곡이었다.

지팡이가 눈이다. 순이 아버지는 딸과 살면서 목수 일을 했다. 심성이 곧았던 그는 나무 지팡이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쥐어주었다. 하지만 그도 눈병을 얻으면서 딸의 손을 놓았다. 어둠 속에 홀로 남은 순이의 울음이 메아리처럼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눈병은 애간장 녹이는 재앙이었고 겨울은 길고 추웠다. 신음은 담을 넘고 넘어 산속의 절 앞에서 멎었다. 개목開目사 앞마당은 변곡점이다. 노승의 기도로 눈병은 시나브로 잦아들었고 서후면의 하늘은 다시 맑아졌다. 태풍처럼 마을을 휩쓸고 간 아픔도 시간이 약이다. 사람들도 굽은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저곳이다! 속설의 진원지다. 개목사 전각이 눈에 들어온다. 소박하고 고적하다. 바람 한 점 없는 천등산 아래 아늑한 은신처처럼 느껴진다. 해바라기는 무거운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앞마당의 은행나무는 몇백을 훌쩍 넘긴 듯하다. 꼿꼿한 허리는 세월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성정을 보이는가 싶다. 객을 보고 쿰쿰한 냄새를 풍기지만 던적스럽지 않은 인정스러움이다.

개목사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조선 세조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법당은 온돌을 놓아 조선 전기 건축으로는 보기 드문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원통전 안은 누구라도 마음자리 쉬어갈 수 있게 온기가 돈다.

절간은 일주문도 해탈문도 없다. 문지방으로 햇살만 넘나든다. <향내 품은 툇마루> 글 속의 그날도, 오늘도 주지스님은 툇마루만 따끈하게 데워두고 출타 중이다. 풍경도 옮아온 듯 서먹하지 않다.

툇마루 깊숙이 걸터앉는다. 손 등으로 결을 쓸어보면 할머니댁에 이른다. 할머니는 읍내 장에서 사 온 아기 얼굴만 한 수박을 우물물에 담가 두셨다. 점심을 먹은 후 수박을 반으로 쪼개면 하얀 속살의 단맛은 시원했다. 도시에서 온 손녀에게 주신 푸짐한 간식이었다, 마루는 그때나 지금도 넉넉하고 순박한 정을 나누는 곳이다.

은행나무는 구릿한 냄새를 풍기며 객을 졸졸 따라다닌다. 눈길을 주지 않는 객의 어깨 위에 노란 잎을 훅~ 날린다. 옷깃을 당기며 장난치는 짓궂은 아이 같다. 혹시 주지스님이 당부했는지 모른다. 문은 활짝 열어 두고 객이 오면 반갑게 맞고 절간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은행알을 한적한 길섶에 떨어뜨린다. ‘정몽주’의 시비가 있는 옆 마당이다. 선생은 천등산의 변화무쌍한 기운을 입어 십 년간 수행과 학문을 연마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고려에 대한 애국충절을 지키다 죽음을 맞았던 그를 보게 하려고 그런 거였다. 선죽교의 햇살도 오늘처럼 붉고 선연했을까. 그가 주지스님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던 시 한 편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은행나무는 하세월 우직하게 버틴다. 숭숭한 둥치의 구멍들은 입동을 앞둔 바람 앞에서 관절마다 쑤실 것이다. 심한 골다증이라도 끙끙 앓는 사람처럼. 문득 ‘은행나무가 개목사를 지키는 큰 스님’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어느 주지스님처럼 삼천 배를 해야 만날 수 있는 위엄을 갖춘 건 아니다. 인정어린 스님이다. 항상 바쁜 작은 스님을 대신해서 문지방을 넘나들며 절간을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법당 앞 툇마루에 다시 앉았다. 따끈한 툇마루가 불이문不二門이다. 견물생심, 비우고 비워야 한다는 그것마저 욕심이다. 욕심도 소유가 아니던가. 나는 요즘 속살이 갓 차오르는 글심에 욕심이 부푼다. 무거워지는 글눈을 뜨기 위해 개목사를 찾았다. ‘안다고 하여 무엇을 알며 본다고 하여 진정 무엇을 보았는지.’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는 죽비 같은 은행나무 한 알이 발아래 떨어진다. 큰스님의 일침이다.

오후의 햇살이 수터에 일렁인다. 물 한 바가지를 들이킨다. 눈을 씻는다. 세상을 보는 눈을 제대로 뜨라는 ‘개목開目’이다. 나는 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질 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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