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의료지시서’를 받아 들고

이성숙

재미수필가

캘리포니아에 존엄사가 허용된 지 5년째다. 이제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존엄사, 안락사 또는 다소 자극적 적극적 의미의 조력자살이라는 표현도 쓴다. 법안은 아마도 가장 경건하고 순한 느낌을 주는 ‘존엄’을 선택한 듯하다. 따라서 용어는 객관적으로 존엄사(Death with Dignity)로 정리되었다. 존엄사법은 의료수준의 발달로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그만 두어야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법안이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인 죽음이라는 것 때문에 현재도 논란이 남아 있기는 하다. 법 제정 의도와 달리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가능성이 남아 있고, 환자 입장에서는 죽음을 강요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엄사를 결정한 남은 가족에게는 정서적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

필자는 과거 한 신문에서 존엄사에 대해 지면 대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논의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죽음에 대한 이해나 태도는 한심할만큼 무지한 수준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순간 병원에서 ‘사전 의료지시서’라는 것을 준다. 내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되었을 순간에 가족이나 누군가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갖는다는 매우 진보적 조치이나 이 사전 의료지시서를 받고 며칠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종이를 받아들고 내용을 검토하는데 마음이 왜 이리 착잡한지, 생에 대한 집착이 이리 큰 건지, 나는 새삼 이기심과 옹졸함에 놀라고 있다. 나를 망설이게 하는 질문 항목 몇 가지를 살펴본다.

‘장기를 기증할 것인가?’ 망설인다. ‘어느 부위를 기증할 것인가?’ 멍하다.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연명치료를 원하나?’ 글쎄다.

이것이 현재 나의 상황이다.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삶의 질이 중요하지 연명치료는 해서 뭣하나 하며 큰소리치던 나다. 대담을 진행하던 몇 년 전만 해도 뇌사를 했다면 장기 기증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공익과 박애적 측면에서 그렇고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공헌하는 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나를 향해 하게 되니 두려움뿐이다. 어떤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 손가락질을 하는데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 세 개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나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얼마나 엉성한 것이었던가. 화장을 원하는가 매장을 원하는가 하는 질문도 있다. 평소에 나는 화장이 옳다고 믿었다. 땅도 좁아드는데 양지 바른 곳에 죄다 묘지를 둘 것이 뭐 있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웬걸, 살점이 터지면서 탁탁 불꽃이 튀는 화장장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나는 일주일을 넘기며 ‘죽음 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마침내 매우 이성적인 답안지를 작성하기에 이른다. 연명치료는 필요 없고 건강한 장기를 모두 기증할 것이며 주검은 화장하라.

아직 불편한 마음까지 씻어낸 건 아니다. 나는 사전 의료지시서를 제출하기 전 간호사에게 몇 번이나 물어야 했다.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하느냐고. 간호사가 나를 위로하며 답을 건넨다. 언제든 내용을 바꿀 수 있다고. 비로소 내게 안정이 온다. 의학이 쓸데없이 사람을 괴롭히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옛날처럼,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과정이고 그저 앓다가 가면 좋을 것을 이라는 허탈한 생각도 든다. 수명이 환갑을 넘기기가 어렵던 때에 비하면 현대인의 수명은 거의 두 배나 늘었다. 덕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화두가 된 세상이다. 잘 먹고 잘 살다가 남은 것이 있어 나눌 수 있다면 축복이리라.

사실 죽음이란 그리 먼 미래가 아닐지 모른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데 그것을 못 깨닫고 사는 것이지. 그래서 축복이라고들 하나보다. 사전 의료지시서를 써 내고 보니 건강한 하루가 이리 새삼스러울 수가 없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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