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로의 일침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얼마 전 경제 원로들과 우리 경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나름 이코노미스트로 우리 경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들과 의견을 나누면 나눌수록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모임 내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엇보다 이들과의 시차(time-lag)가 너무 크다는 것에 놀랐다. 이코노미스트라고 해 봐야 지금 당장 또는 길어도 1~2년 앞을 내다보는 것이 한계다. 그마저도 잘 맞지도 않는다. 경제전망이 대표적인 예다. 예전에는 1년에 1~2번 했지만, 요즘은 분기마다 예측을 내 놓지만 정확성은 이전만 못 하다. 물론, 이코노미스트가 모든 예측을 정확히 맞출 수는 없다. 전망 환경도 예전과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틀려도 너무 틀리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코노미스트들이 내놓는 전망치에 대한 시장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이코노미스트들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점점 단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그나마 어쩌다 한 번씩 내놓는 중장기 전망 정도가 설득력 있게 보이긴 한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경제 원로들은 이러한 점들은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가 가는 길에 대해 쏟아내는 질문과 의견들은 참으로 서슬 퍼런 칼날 같았고, 무지와 궁색함에 요리조리 피할 구멍을 찾느라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경제가 노동시장 개혁이나 정부규제 완화, 투자 촉진 등 당면한 내부 문제들에 대한 개혁을 통해 혁신에 성공하여 신산업을 일으킴으로써 2%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단박에 답할 수 있었겠는가. 이를 통해 국가부채의 증가를 억제하여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되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두주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변을 뒤로 한 채 겨우 한숨만 내쉬었다.

또 굳이 부동산 버블의 붕괴가 아니더라도 일본처럼 장기침체에 빠진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본은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서 빚을 내더라도 국민이 이를 받아줬지만, 우리나라는 과연 그럴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또 어찌했겠는가.

물론 답변하고자 마음만 먹었더라면 얼마든지 했겠지만, 논리적인 언변만으로 수긍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수긍한들 어쩌랴. 이미 현실은 그렇게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 아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미형 재정 파탄에 의한 국가위기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등 이른바 위기란 위기는 총망라해서 나왔지만,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새로운 희망도 보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상위권의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경제 규모에 비해 R&D 등 혁신을 위한 투자 수준도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인구는 줄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올인하고 있고, 끊임없이 우수한 인적자원을 배출하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다른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떻게 파산할 수 있겠는가. 만약, 파산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 전에 어김없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뛰어난 산업 기반과 인적자본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혁신에 대한 투자 효율성은 어떻게 높여 나갈 지와 같은 부분별 정책들은 정치한 정책의사 결정 과정 속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빠질 수 없겠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그들이 의문을 가지거나, 지적하는 것 하나하나가 이미 많은 논란이 된 것들이라 와 닿는 정도가 약간 미지근하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여느 추리소설처럼 대가와의 만남은 늘 끝에 가서 야 중요한 가르침을 얻는다. ‘우리는 지속성장할 수 있는 한국형 경제모형을 견지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모두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어느 원로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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