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원성대왕-②외세의 간섭||원성왕 즉위 축하연에서 만파식적 신비 보여, 일본과 당나
원성왕은 아들 인겸을 태자로 책봉했지만 죽어 둘째 의영을 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아들까지 차례로 죽어버리자 인겸의 아들이자 손자인 준옹을 태자로 삼아 나중에 39대 소성왕이 되었다.
원성왕이 왕위에 오르자 중국을 비롯 일본에서도 사신을 보내 보물 만파식적을 보고 싶어 하는 등으로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연회 국사가 번번이 해결책을 내놓으며 나라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야사가 설득력 있다.
왕은 진실로 잘되고 못 되는 변화를 잘 알았으므로 신공사뇌가를 지었다. 왕의 아버지 효양 대각간은 조정의 만파식적을 전하여 왕에게 넘겨주었다. 왕이 이것을 얻었으므로 하늘의 은혜를 두터이 받았고 그 덕이 멀리 빛났다.
정원 2년은 병인년(786)인데 10월11일에 일본의 문경왕이 군대를 일으켜 신라를 치고자 했으나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물러갔다. 그러면서 사신을 시켜 금 50냥을 내고 그 피리를 보자고 했다. 왕은 사신에게 “짐도 윗대의 진평왕 때 있었다고 들었을 뿐이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오”라고 말했다.
다음해 7월7일 다시 일본왕은 사신에게 금 1천 냥을 보내며 청하였다. “과인이 신기한 물건을 보고 돌려주려 합니다.” 왕은 저번처럼 사양하면서 은 3천 냥을 그 사신에게 내려주었다. 금은 돌려주고 받지 않았다. 8월에 사신이 돌아가자 피리를 내황전에 보관하게 하였다.
왕이 즉위한 지 11년째인 을해년(795)이었다. 당나라 사신이 서울에 왔다가 보름을 머물다 돌아갔다. 그런 다음 하루는 두 여자가 궁 안에 들어와 “저희는 동지와 청지에 있는 두 용의 마누라입니다. 당나라 사신이 하서국 사람 둘을 데려와서 우리 남편 두 용과 분황사 우물 용 등 세 용에게 주문을 걸어 작은 물고기로 바꾼 다음 통에 넣고 돌아갔습니다”고 했다. 이어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두 사람을 붙잡아 주소서. 우리 남편들은 나라를 지키는 용입니다”고 청했다.
그러자 물고기 세 마리를 꺼내 바쳤다. 세 곳에 풀어주니 물살을 한길 남짓 튀기면서 기뻐 뛰며 갔다. 당나라 사람들이 왕의 명석함에 탄복하였다.
왕이 하루는 황룡사의 승려 지해를 안으로 불러들여 50일 동안 화엄경을 강의하게 하였다. 승려 묘정이 매번 금광정에 바리때를 씻는데 자라 한 마리가 우물 안에서 잠겼다 올랐다 하였다. 묘정이 그때마다 남은 음식을 먹이며 놀았다. 50일간의 화엄경 강의가 끝나자 묘정이 자라에게 “내가 너에게 덕을 베푼 지 여러 날인데 무엇으로 갚아주겠니”라고 말했다.
며칠이 지나 자라가 작은 구슬 하나를 마치 주려는 것처럼 뱉어냈다. 묘정이 그 구슬을 가져다가 허리띠 끝에 달고 다녔는데 그런 다음 대왕이 묘정을 보고 매우 아껴 내전에 불러들여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하였다. 그때 잡간 한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그 또한 묘정을 아껴 함께 가도록 청하자 왕이 허락하였다.
같이 당나라에 들어가자 당나라 황제 또한 묘정을 보고 총애하니 주변의 정승들이 우러러 마지 않았다. 점을 치는 신하 한 사람이 “이 승려를 살펴보니 하나도 좋은 관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들로부터 존경과 믿음을 받으니 반드시 특이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했다.
사람을 시켜 검사해 보자 띠 끝에 작은 구슬이 보였다. 황제가 “짐이 여의주 네 낱을 가지고 있다가 지난해 하나를 잃어버렸다. 지금 이 구슬을 보니 곧 내가 잃어버린 것이로구나”라고 말했다.
묘정은 구슬을 얻은 일을 모두 갖추어 설명드렸다. 황제가 구슬을 잃어버린 날과 묘정이 구슬을 얻은 날을 가만히 맞추어보니 같은 날이었다. 황제는 그 구슬을 두고 가라고 하였다. 다음부터 사람들이 묘정을 믿고 아끼는 일이 없어졌다.
원성왕은 즉위식에 이어 왕권 강화를 위해 축하연을 열어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나라의 보물 ‘만파식적’을 선보였다. 원성왕은 주연에서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직접 만파식적으로 태평가를 연주했다. 축하연에 참석했던 대신은 물론 모든 이들이 태평가의 연주에 맞춰 어깨동무하기도 하며 흥겨운 춤을 추었다.
당시 축하연에 참석해 만파식적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술에 취했던 사람도, 근심 걱정이 많았던 사람도, 몸에 병이 들었던 사람도 모두 건강하게 활달해졌다. 축하연에는 당과 일본의 사신도 참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만파식적의 신묘한 힘에 대해 보고했다.
당나라 사신도 황제의 명을 받아 신라 궁궐을 찾았다. 역시 만파식적을 빌려 가려는 수작이었다. 당나라 사신은 일본 사신들이 실패하고 돌아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원성왕의 측근에 있는 대신들에게 접근해 기회를 노렸다. 당나라에서 온 사신들은 주술사들을 동원해 여차하면 술법으로 만파식적을 가져가려 했다.
그러던 중 당나라 사신들은 만파식적에 못지않은 힘을 가진 영물이 신라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꿩 대신 닭이 아닌 봉황을 잡은 셈이었다. 당나라 사신들은 신라 궁성 주변에 웅크리고 있는 영험한 힘을 가진 세 마리의 용을 작은 물고기로 변신시켜 호리병에 넣어 도주했다.
신하들이 연희스님을 모시려 파발마를 출발시키려는 때 삿갓을 깊이 눌러 쓴 훤칠하게 키가 큰 스님이 “먼 길 가는 수고를 덜어주려 하오”라며 궁으로 안내하라 전했다.
연희 스님은 원성왕의 부탁을 직접 받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사흘 만에 호리병 세 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왕을 대동하고 월지와 황룡사, 분황사를 돌며 호리병에서 물고기를 방사했다. 물고기는 청룡, 황룡으로 모습을 바꾸어 모두 거대한 용오름으로 한차례 춤사위를 보이고는 다시 연못으로 들어갔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