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소 폐쇄 및 원상복구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안전이 우선”||가동 3년 만에 지열

▲ 스위스 바젤지열발전소는 2017년부터 시추공을 다시 열어 정기적으로 물을 빼내고 있다. 사진은 스위스 바젤지열발전소 외부 전경.
▲ 스위스 바젤지열발전소는 2017년부터 시추공을 다시 열어 정기적으로 물을 빼내고 있다. 사진은 스위스 바젤지열발전소 외부 전경.


▲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 발전 설비. 이 발전소는 비화산지대에서 주로 쓰이는 인공저류지열시스템 방식을 도입했다.
▲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 발전 설비. 이 발전소는 비화산지대에서 주로 쓰이는 인공저류지열시스템 방식을 도입했다.
▲ 바젤시 환경에너지팀 마르쿠스 다이콘 팀장.
▲ 바젤시 환경에너지팀 마르쿠스 다이콘 팀장.
▲ 이강덕 포항시장.
▲ 이강덕 포항시장.
▲ 지열발전소 폐쇄 요구를 위해 포항시민들이 상경해 집회를 벌이고 있다.
▲ 지열발전소 폐쇄 요구를 위해 포항시민들이 상경해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바젤 중앙역에서 트램과 버스로 20분 남짓 달리니 원형 펜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젤시 환경관리공단 주차장 한가운데 주황색 철조망에 둘러싸인 지열발전소 모습이다.

발전소라 해서 뭔지 모를 ‘웅장함’을 예상했건만,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설비 대부분이 철거된 채 어른 키만 한 펌프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를 미뤄 과거 이 일대가 지열발전소 부지였다는 사실을 짐작게 했다. 이 발전소는 비화산지대에서 주로 쓰이는 인공저류지열시스템(EGS) 방식을 도입했다.

EGS는 수리자극(지하 암반에 물을 주입해 인공적인 틈을 만드는 것)에 따른 수많은 미소지진을 일으킨다.

그런데 바젤 지열발전소는 통상적인 관점에서 수리자극에 따른 지진 강도가 너무 높았다. 2006년 12월8일 저녁, 규모 2.7과 3.4 지진이 잇달아 발생한 것이다. 물 주입에 나선 지 불과 엿새만이었다.

바젤지역 환경단체 간부 호른 메이다(31)씨는 “지진 당일 아침에 29.6MPa의 압력으로 초당 50ℓ의 물이 땅속에 주입됐다”면서 “이는 프랑스 슐츠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 평균 수압(14.5MPa)의 2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유발지진 3년 만에 지열발전소 폐쇄

지진이 나자 건물 외벽에 금이 가는 등 2천700여 건의 재산피해 보고가 접수됐다.

스위스 정밀조사단은 3년간에 걸친 연구 끝에 지열발전소가 땅에 구멍을 뚫고 물을 주입하거나 뜨거워진 물을 뽑아 올린 것이 지진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스위스 정부는 결국 2009년, 이 지열발전소에 대해 ‘폐쇄’ 조처를 내렸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 발생 이후 지열발전소 ‘유지’와 ‘개선’은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EGS 프로젝트를 이어가면 향후 30년 동안 최대 200번, 최대 규모 5.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른 비용은 최대 3억 스위스프랑(약 3천600억 원)에 달한다고 예측했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도 스위스 정부의 지열발전소 폐쇄 정책을 지지했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마크 레빈 소장은 “큰 지진이 발생하면 지하에 공극이 커져 EGS 프로젝트의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EGS는 지하의 지열을 통해 물을 데운 후 다시 물을 빼내는 방식으로, 지하에 고인 물이 빨리 데워질수록 경제성이 있다.

지하에 물이 그물망처럼 퍼져 물이 지각에 닿는 표면적이 넓은 것이 유리한 셈이다.

반면 큰 지진은 물의 압력이 지하에 큰 내부 공간을 만들어 열을 많이 얻지 못한다는 게 레빈 소장의 논리다.

포항지진 이전 EGS에 따른 가장 큰 유발 지진은 2003년 호주 쿠퍼의 규모 3.7이다. 이 지열발전소는 지진 이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쇄됐다.

2009년 규모 2.7의 유발 지진이 일어난 독일 란다우도 현재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땅속에 남아있는 물 처리 방법 쟁점

그렇다고 지열발전소를 무작정 폐쇄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시추공을 메워 버리는 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바젤 지열발전소의 경우 2007년부터 4년여 간 시추공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지진이 단 1건에 그쳤다.

하지만 2011년 4월 시추공을 닫은 뒤 지하 압력이 증가하면서 2012년부터는 다시 지진이 잦아졌다.

발전소 측은 이를 검토해 2017년부터 다시 시추공을 열어 정기적으로 물을 빼내고 있다.

바젤시 환경에너지팀 마르쿠스 다이콘 팀장은 “시추공을 닫자 지하에 남아있는 물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수압이 높아져 시추공을 다시 열어야만 했다”면서 “물 배출 작업은 매월 1~2회씩, 12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발전소 지하에는 1천t 내외의 물이 남아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지하의 압력을 조절해야 하는 걸까.

포항지열발전소는 2016년 1월부터 1년9개월 간 발전소를 시험가동하면서 총 1만3천t의 물을 땅에 주입했다.

시험을 거듭하며 7천t의 물은 빼냈지만 포항지진 이후 나머지 6천t은 여전히 땅속에 남아있는 상태다.

문제는 남아있는 물이 지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물을 빼낼 수도 없다.

많은 전문가는 물을 빼내는 과정에서 지하 압력이 변하면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스위스도 지열발전소를 폐쇄한 뒤 남아있는 물을 빼내는 과정에서 지진이 다시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바젤시는 지진 이후 변화된 지층 구조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과 상당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다이콘 팀장은 설명했다.

이에 관해 세부적인 설명을 이어가던 그는 지열발전소 안내를 마무리하면서 취재진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지열발전소 폐쇄 및 원상복구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안전이 우선입니다.”





=이강덕 포항시장 인터뷰=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앞서 지진을 피할 기회가 4번이나 있었음에도 당시 정부의 무지와 자료해석 부실, 안전관리 부재 등이 참사를 자초했다.

지난 4월 이강덕 포항시장이 삭발하고, 시민 3만여 명이 도심에서 유례없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가 항의 집회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지진이 아니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연구결과가 나온 지 7개월이 넘도록 달라진 것은 없다.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은 지지부진하고, 지열발전소 안정화 논의는 걸음마 수준이다.

포항시장 집무실에서 이 시장을 만나 향후 지열발전소 사후 처리방향에 대한 계획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포항지진의 원인은.

-포항 지열발전소에서 지열발전을 위해 지하에 압력이 높은 물을 주입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가 활성화됐다. 정부와 국내 지질관련 학자들이 지열발전 연구 프로젝트에 본격 들어가기 전 입지 선정 때 단층 등 지반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을 유발한 것이 증명됐다.

△지열발전소 폐쇄만이 정답인가.

-백번 양보해서 자연지진이라 해도 지진이 일어난 지역에 지열발전소가 가동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열발전소는 반드시 폐쇄돼야 하고, 정부에 부지 원상복구도 요구할 것이다. 포항시민의 분노는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지열발전소 건립과 운영에 관여한 기관과 회사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폐쇄 이후 사후 관리방안은.

-스위스 바젤에서는 지열발전에 따른 유발 지진이 발생하자 즉각 발전소를 폐쇄했지만 땅속에 남아있던 물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2년 후 또다시 지진이 발생했다. 이 같은 사례를 참고해서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리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물을 빼고 압력을 빼서 완전 폐쇄하는 게 좋은지 전문가 조사를 거쳐 사후관리를 위한 관리방안을 수립하겠다.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도 요구하는데.

-개별 소송으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진피해 주민들에 대한 신속한 보상과 지역 재건 등을 위해서는 종합적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 파행 등으로 특별법 제정이 별다른 진척이 없어 포항시민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스위스의 경우 전문가들이 3년간 조사를 거쳐 20년 이상 장기계획을 세우고 지진전문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사후관리를 위한 지속적인 관리방안을 세웠다. 지열발전소 안전 폐쇄와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으로 정부가 시민불안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웅희 기자 wo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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