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불쏘시개

김창원

독자여론부장

유명인의 말은 회자된다. 화자가 좋은 사람이던지 나쁜 사람이던지 상관치 않는다. 지난주(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로 정국을 흔든 조국 사태는 일단락됐다. 조 전 장관은 사퇴에 앞서 불쏘시개라는 말을 남겼다.

불쏘시개는 불을 붙이기 위한 매개체로 쉽게 불을 붙일 수 있는 물질에 먼저 불을 놓아 나무에 옮겨 붙도록 하는 방법으로 화력이 센 마른 나뭇가지나 장작에 불을 옮겨 붙이기 위해 먼저 태우는 물건이다.

불쏘시개가 정치에도 적용되는 모양세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조 장관의 사퇴 이후 정치권은 검찰개혁과 연동형 비례제 도입과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처리를 두고 연일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는지는 두고 볼일이다.

조 전 장관의 불쏘시개는 중요한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먼저 필요한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자신이 검찰개혁을 위해 역할을 했고 자신의 그런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의미로 읽힌다. 불쏘시개에 먼저 불을 붙여 조금씩 불을 키워나가는 것처럼 작을 불꽃을 먼저 일으켜 큰 불이 나게 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국 장관은 자신이 검찰개혁의 불쏘시개였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짓과 위선과 불공정을 폭로하는 불쏘시개였다는 점을 알고 있을까. 온 국민이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심각한 분열을 불러온 불쏘시개가 자신이었다는 것은 모른 체 하는 걸까. 문재인 대통령도 조 장관의 사퇴에 대해 “결과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나. 자신이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로서의 자격이 있었는지는 돌아보지 않은 걸까.

장관 지명과 임명 그리고 사퇴를 거치는 2개월 동안 그를 둘러싼 논란은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실종됐다. 국론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양분됐고 국회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마저 ‘조국 사태’가 휩쓸었다. 그동안 기업경기는 더 얼어붙었고 소비심리도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지난 1년새 금융사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자영업자가 28%나 증가했는데도 민생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을 중심으로 곡소리가 이어져도 돌아보는 정치사회지도자는 없었다.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결과가 상식이 되는 사회를 바라며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청년들이 좌절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조국 장관은 사퇴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갈등을 봉합하고 소통과 화합에 나서야 할 때다. 정치권도 국론통합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져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들의 말은 보기에 따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법원의 판단이다. 국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없는 죄를 만들라는 게 아니다.

그동안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가 사라져 좌절과 상처를 겪은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제기되었던 수많은 의혹에 대한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밝히는 것이다. 더 이상 특권과 반칙, 편법이 통하는 사회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할 것 아닌가.

조국 전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속하고도 철저한 수사는 갈라졌던 국론분열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조 장관 사퇴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국론통합의 불쏘시개에 불을 지피는 게 순서다. 막말에 갈등만 일으키는 한국정치를 개혁할 불쏘시개에도 불을 붙여야 한다.

총선이 6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민생을 보듬는 불쏘시개는 누가 될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다. 빚내서 빚을 갚는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는 불씨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 역할은 누가 해줄지 지켜보고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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