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황영선

장려상 황영선

금오신화의 산실 용장사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금오산과 고위산 사이 용장 계곡으로 흐르는 낮은 물소리가 글 읽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 길이 은적골로 가는 길임을 알려주듯 길의 초입에 김시습이 은거하며 쓴 시가 발걸음을 붙든다.

시대와의 불화를 글로 쓰며 은둔과 방랑을 선택한 그에게도 인간적인 고독은 어쩔 수 없었는지 그가 이곳에서 쓴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용장골 골 깊으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가는 바람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으라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앉았는데

깰 줄을 모르는구나 억새 처마 밑에서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설잠 김시습)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지조를 지키며 은둔의 길을 걸어간 고독했던 옛 시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길이다. 물소리는 돌돌돌 흘러 밖으로 길을 내는데, 뭇 꽃과 봄빛을 누리지 않고 세간의 불의에 등을 돌린 채 홀로 지조를 지키려 했던 매월당의 향기를 찾아간다.

경주 남산은 가는 곳마다 돌부처가 말을 건다. 이곳은 골짜기 이름조차 절골, 열반골이다. 이 길을 곧장 걸어가면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김시습이 승려가 되어 찾아든 은적골로 들어서면 바위 속에 집을 짓고 웃고 있는 부처를 만날 수가 있다. 김시습의 삶의 궤적은 신라 말 전국을 유랑하며 수많은 글을 남긴 비운의 천재 최치원을 떠올리게 한다.

경주 내남 용장골로 들어서서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을 놓치지 않게 설잠교가 나온다. 설잠은 김시습의 법명이다. 골짜기에서 올려다보면 산정 높이 산을 기단으로 한 용장사 3층 석탑이 아득하게 보인다. 아! 하고 탄성이 새어 나오게 만드는 산과 한 몸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그 석탑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용장골을 벗어나 계곡을 건너 은적골로 향한다.

골짜기를 따라 휘적휘적 걷노라면 집에서 한 짐 지고 나온 무겁던 상념들이 사라지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듯 생각이 맑아진다. 이 기슭 어디엔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말하듯 깨어진 돌절구가 보인다. 숨이 살짝 가빠질 무렵 대숲에 둘러싸인 공터가 나온다. 매월당이 은거하며 우리나라 최초 소설 금오신화를 썼다는 바로 그곳이다.

그가 머물던 암자도 사라지고 절도 사라진 빈터에 무슨 인연으로 와 이렇듯 서성이는 것일까? 시대와의 불화를 글로 풀어내었던 고독한 시인이자 소설가. 대숲을 둘러봐도 은적암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암자를 앉히기 위해 쌓았던 축대와 무너진 석탑들이 골짜기에 나뒹군다. 폐허에 불을 밝히듯 양지바른 한쪽에 달맞이꽃이 피어 방문객을 맞고 있다.

그는 이 적막함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며 어둠을 갈아 글을 썼으리라. 우리나라 최초의 기전체 한문 소설 금오신화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무엇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내면에 불을 밝히며 글을 쓰게 하였을까? 전국을 떠돌며 은둔의 길을 걸었던 매월당이 이곳에 6년여 머물며 금오신화를 썼으니, 방랑자도 발을 멈추게 하는 매력이 이 은적골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은근히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이 때론 숨 가쁘고, 좌우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길만 보며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내내 오르막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시야를 확 틔우며 쉬어가라는 듯 반석이 나오고, 먼 곳을 내다보며 살라는 듯이 하늘이 숨통을 틔워준다. 건너 고위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 눈앞에 다가선다.

은적골을 올라서면 맷돌을 쌓아 올린 듯한 삼륜대좌 위에 앉은 석조여래와 바위에 은거한 마애여래불이 나온다. 신라 고승 대현 스님이 염불을 하며 탑을 돌면, 석불도 고승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전하는 그 여래불이다. 그러나 얼굴이 사라지고 없다. 그 옆 바위 속에 은거한 여래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남아있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고 손을 내밀어 위로해줄 것만 같다. 지워질 듯 희미한 바윗길을 따라 오르면 아래쪽에서 우러러보았던 삼층석탑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김시습은 경주의 유적을 돌아보며 흥망성쇠는 끝없이 반복되는 법이며, 옛일과 지금 일로 미래를 추론한다는 의미깊은 말을 남겼다. 무너진 담에 봄비가 내려 풀이 무성한 그곳에 나그네의 한이 머문다고 했으니, 매월당이 경주 용장사지로 찾아든 까닭을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는 이곳에서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처럼 지조를 지키며 은둔의 세월을 소설을 쓰고 시를 지으며 견뎠다.

그는 유독 매화를 사랑했다. 뜰에 매화를 심고 당호를 매월당이라고 지었으며, 글을 쓸 때도 매월당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그는 매화를 보며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연 속에 피어나는 매화에 이끌려 무심의 경지에 가 닿고 싶어 하던 그. 세한의 시절을 견디며 매화꽃 향기 같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을 집필했다.

매화는 차가운 겨울을 이겨 내는 고결하고도 지조를 지키는 고독한 꽃이다. 세한은 올바른 이념이 실현되지 못하는 시대를 상징한다. 세한에 홀로 피어난 매화는 곧 지조를 지키는 고결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뜻하니, 매월당은 지조를 지키며 은둔한 고독한 자신의 모습을 매화에 투영하고 위로받았음이 분명하다.

은적골에 눈이 내리면 사방은 적막강산이 되고, 찾아드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불을 보며 찾아든 산짐승을 서로 측은하게 바라보며 외로움을 나눴을 은자! 전국 명산대찰을 돌며 방랑과 은둔의 길 곳곳에서 글을 써서 남겼다. 냉철한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세상에 등을 돌린 불꽃 같은 성정의 그.

탈출구를 찾듯 미친 듯이 시를 읊었고, 누군가 읽어주는 시를 들으며 울음 우는 눈물 많은 남자였다. 단종의 폐위 소식을 듣고 사흘간 통곡한 뒤 읽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불가에 입문해 승복을 입고 전국을 떠돌았던 김시습. 지조도 절개도 없이 꺾이는 변절자들을 보며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고 세상에 등을 돌리고 은둔의 길을 걸었던 그는 시인이요, 소설가요, 고독한 선각자였다.

산정의 흰 눈처럼 깨끗하지만 고독했던 사람 설잠(雪岑)! 그는 이곳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무상을 글로 쓰며 폐허가 된 자신을 수습하였는지도 모른다. 구름처럼 전국을 떠돌며 방랑을 하던 조선 시대 생육신 김시습. 그가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산실 용장사지에서 차 한잔을 올린다.

매화처럼 절개를 지키며 달처럼 은둔의 길을 걸어간 매월당. 그가 고뇌에 찬 얼굴로 굴갓을 눌러쓰고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뻥 뚫린 가슴의 구멍에 손을 얹으면 대숲이 대금 소리를 낼 것 같은 적막이다. 그가 머물던 금오산 기슭 은적골에 대숲 그림자가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사슴이 와 창가에 머물다 갔다는 절터에 바람이 불고 있다.

나뭇잎에 시를 써서 강물에 띄워 보낸 시는 어디쯤 가 닿았을까? 그가 불태운 수많은 시는 불씨가 되어 수많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밭둑가의 쑥대처럼 떠돌아도 세상 살아가는 길이 험하고 위태로워 꽃떨기 냄새나 맡으며 말없이 지내겠다던 그는 글 속에 할 말을 쏟아 부었는지 모른다. 거름통 같은 세상을 벗어나 글 속에 아름다운 산천을 담고, 고통에 신음하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남겼다.

그가 머물렀던 매월당은 빈 원고지처럼 남아있다.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 아직도 남은 이야기가 많다는 듯이 용장사지 곳곳에 깨어진 돌탑들이 뒹군다. 흩어진 탑신을 찾아 다시 일으켜 세우듯 용장사지 금오신화의 산실을 찾아 걸었다. 종교를 아우르는 사유와 빼어난 문장가였던 그가 말을 걸어오고 있다. 신화를 꿈꾸듯 금오신화를 썼던 대숲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바람결에 사운댄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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