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가 광장집회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한·일 경제 갈등, 미·중 무역 전쟁, 미·북 핵회담 등 중요하고 시급한 국가적 현안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지만, 여기에 눈 돌릴 여력이 없을 만큼 온 나라가 광장에서 벌어지는 편 가르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편 가르기는 우리에게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다. 아이 때는 여러 놀이를 하기 위해 편 가르기를 했었고, 좀 더 커서는 죽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였다. 물론 어른이 돼서도 이런 성향은 자연스럽게 이어져 소위 ‘끼리끼리 문화’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광장의 편 가르기는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감정대립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가볍게 봐지지 않는다. 그동안은 거의 매 주말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극우 진영의 집회만 볼 수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보수, 진보라는 진영까지 가세해 서로 범보수니, 범진보니 부르며 세 대결로 번져가는 모습이다.

게다가 주말 집회가 끝나면 어느 쪽 집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가 또 다른 이슈가 되기도 한다. 참석자 수로 어느 진영이 이겼는지 결정 짓는 분위기를 보면 과연 이게 정상인지, 뭘 위한 것인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합치되는 부분이 시쳇말로 1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나라가 잘돼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에 거리로 나왔다’고 똑같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또 희한하다. 애국심이라는 동기와 국익이라는 목표는 동일한데 어떻게 저렇게 죽기 살기로 싸움질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개인이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두고, 합법적인 방법으로만 한다면 누가 뭐라 하고 또 이를 부정적으로 보겠는가. 다만 요즘 광장 집회와 이와 관련된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과연 이런 식의 편 가르기를 하는 목적이 이들의 주장대로 애국심 때문이라는 게 쉬이 공감이 가지 않는다. 국익이라는 알맹이 없이 세 과시라는 겉 포장에만 신경 쓰는 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서로 세를 과시하며 그것이 전체 여론인 양 포장하고, 또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포장된 세를 이용하는 행태가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 침묵하는 많은 국민은 과연 동의할까?

더욱이 편 가르기 집회에 대해 정치권이 쏟아내는 말들은 국민을 과거 어느 고위공직자의 말처럼 개, 돼지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염치가 없고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그래도 아이들의 편 가르기에서는 게임의 룰이 지켜지고 또 그 결과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 승복이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겉보기에 이길 가능성이 커 보이는 쪽으로 가려고 행동하는 약삭빠른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놀이는 재미와 친교라는 목적에 충실했던 것 같다.

그럼 지금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편 가르기도 그럴까. 어른들이 하는 편 가르기는 대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추구 때문일 수도 있고, 때론 이념이나 신념이 달라 대립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이 외에 다른 이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편 가르기와 관련해 재미있는 주장이 있다. 학자 중에는 사회의 편 가르기가 ‘부추김’과 ‘따라 하기’ 때문에 증폭된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즉 대중의 부추김과 따라 하기 심리를 여러 진영에서 편 가르기를 강화하고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인터넷이나 SNS에서 하는 댓글 달기와 동의-비동의 누르기도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시작된 쟁점의 경우 편 가르기 구도가 직접 당사자인 정당을 넘어 지역, 계층, 세대로까지 확장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경우 특정 세력의 의도적 부추김과 맹목적 따라 하기가 일정 부분 작용하지 않았겠나 하는 의혹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집단의 편 가르기는 때론 개인에게 곤혹스럽고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 물어본다. “혹시 내가 부추김과 따라 하기에 가세한 것은 아닌가?”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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