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유태일



땅속에 묻힌 말들이 금방이라도 무덤을 열고 나올 것 같다. 무슨 사연의 말들이, 어떤 연유로 이곳에 묻혀 있을까? 다하지 못한 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고분 같은 형태의 무덤은 세월의 풍상에 절반이 없어졌고 큰 돌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언총(言塚)은 이른바 말(言)을 묻어두었다 해서 말무덤이라 불린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해 있다. 500년 전, 각성바지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문중끼리 싸움이 그칠 날 없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처방하기를 마을 지형이 개가 짖는 형국이라 주둥이 송곳니쯤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앞니쯤에 바위 두 개를 세워서 짖지 못하도록 재갈바위를 만들라 했다. 또 싸움의 발단이 된 말들을 사발에 담아 말무덤을 쌓았다. 그 뒤부터 신기하게도 다툼이 없어지고 평온해졌다 한다.

얼마 전,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와 언쟁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농담으로 시작되었으나 차츰 오고 가는 말이 날카로워져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평소 무심코 했던 이야기가 상대방의 가슴에 가시로 박혔던 모양이었다. 자연 언성이 높아지고 지나간 일들까지 불려 나와 시시비비를 가리는 상황이 되었다. 자칫 큰 싸움이 날 판이었다. 지켜보던 일행들이 말린 후에야 싸움은 수그러들었다. 떼어놓고서도 둘은 서로 분을 삭이지 못하며 으르렁대었다.

어느 쪽이든 참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사안이 중대한 것은 아니었다. 한 발 물러서면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나는 농담 중에 후배의 약점을 들추어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후배는 되받아치면서 넘지 못할 선을 넘고 말았다. 당시에는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고 생각했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한 번도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고 말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바벨탑을 쌓았다. 그때만 해도 언어는 하나여서 혼란이 없었다. 하지만 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세상 각지로 흩어지면서 말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언어로만 소통하던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과 불화가 심화되면서 무수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에게 손님맞이 여종들이 찾아와, “귀한 손님이 오시니 청소를 먼저 해야 되겠습니다.” 하는 말에 옳다 하고 “시장하니 음식 준비를 먼저 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그도 옳다고 했다. 지켜보던 부인이 “영감, 무슨 판단이 그렇소?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 하시니.” 하고 묻자 “부인 말도 옳소.”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람들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한 것이리라.

무덤 위에는 못다 한 속내처럼 잔디가 푸릇푸릇 돋아있다. 가만히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말들이 묻어난다. 수의(壽衣)를 벗은 소리들이 제각각 왁자지껄하다. “임이네가 먼저 쇠똥을 우리 집 앞에 뿌렸잖아.” “댁에서 개를 풀어놓는 바람에 키우던 닭이 다 물려 죽었어요.” “자네가 물꼬를 제때 트지 않아 우리 논이 말라버렸잖은가.” “아따 형님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시는가요.” 손바닥을 비비니 말들이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끄응! 하고 눕는다.

어린 날, 이웃집 친구와 싸우곤 일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등하굣길에 만나도 서로 딴 곳만 바라보고 모른 채 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선배의 중재로 오해를 풀고 다시 우정을 찾은 적이 있다. 친한 사이여서 잘못에 대한 섭섭함이 커졌고 괘씸한 마음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때도 내가 침묵하거나 한 발 뒤로 물러섰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분쟁이 생기게 된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선 정보가 넘쳐나고 말이 범람한다. 이른바 언어의 홍수 시대가 되었다. 각종 뉴스며 SNS까지 생겨나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개인 간의 의사소통수단도 다양해져서 전달이 시시때때로 활발하다. 현대판 백가쟁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필요 없는 말이 넘쳐나게 되고 그로 인해 각종 사회적 병폐를 낳게 되었다.

말무덤을 일찍 실천한 사람이 있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밑에서 묵언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사람이 간음한 여자를 향해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칠 때 예수는 조용히 땅바닥에 무언가를 적었다.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남아일언 중천금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은 흔들리는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는 뜻이다. 그렇듯 말무덤에 나를 비추어본다. 이순의 나이가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자주 화를 냈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되기를 바랐다.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어 실속 없이 부산하기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놓인 자연석에 말과 관련된 격언과 속담이 새겨져 있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입에 쓴 약이 병에는 좋다.’, ‘혀 밑에 죽은 말이 있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

조만간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사과의 뜻을 전해야겠다. 이제부턴 남을 해치는 말은 꾹꾹, 내 안에 묻으면서 스스로 언총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사위가 고요하니 마음도 평안해진다. 도심에선 느껴보지 못한 풍경이다. 귀를 기울이면 풀벌레 소리며, 뻐꾸기 우는 소리, 상수리나무 위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까지 들려온다. 사람의 말이 사라진 곳에 비로소 자연의 소리가 맑게 자리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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