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것이 사는 길이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국가번영의 요체는 무엇일까? 논자에 따라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군사력’이라는 자도 있을 것이고, ‘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며, ‘리더십’이라는 말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어느 주장이든 일리가 있어 어느 하나를 딱 잘라 틀린 답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역사를 통해 귀납적으로 추론해보면 개방성이란 공통분모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에서 이집트, 인더스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영웅적 리더십이 돋보이는 걸 부인할 수 없지만 정복지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했던 만인동포주의 내지 세계주의라는 개방성을 간과할 순 없다.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었다. 로마는 조그만 산골짜기 마을에서 발흥하였으나 대제국을 이루어 천 년을 번성했다. 지배과정은 막강한 군사력과 출중한 동맹전략에 힘입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팍스 로마나’를 누렸던 근원은 뛰어난 통찰력과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패자들까지도 포용한 개방성에서 찾아야 한다.

몽골은 몽골고원에 살던 유목민이 건설한 역사상 가장 큰 대제국이었다. 칭기즈칸은 저항하는 도시의 주민을 학살하기도 했지만 피정복민이라 하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수하에 두었고, 그들로부터 얻은 기술, 문화, 학문 등을 국가통치에 활용하였다. 다양한 종교를 용인하고 타민족과의 혼인을 장려하는 등 개방성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몽골민족의 수적 열세와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하였다.

에스파냐의 경우, 무슬림과 유대교를 포용하는 개방성을 유지한 시대는 세계패권국의 번영을 누렸으나 레콩키스타의 완료 이후 무어인과 유대인을 배척하는 폐쇄성으로 인해 그 바턴을 네덜란드, 대영제국으로 넘겨주었다. 네덜란드는 비록 작은 나라이긴 했지만 에스파냐에서 쫓겨 온 유대인을 적극 받아들이는 개방정책을 적극 펼침으로써 잠시나마 세계패권국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대영제국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열린 자세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구축하였다. ‘팍스 브리타니아’는 그 개방성의 결실이었다. 날이 갈수록 사치와 낭비가 만연하고 본국의 부족한 물자와 세금을 식민지에서 무리하게 조달·부과하게 됨에 따라 포용과 관용이란 개방성이 점차 훼손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식민지들이 잇따라 독립하게 되고 세계패권은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미국은 기회의 땅으로 소문나 있던 터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마침내 미국은 이른바 인종의 용광로가 되었다. 미국의 개방성은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란 태생적 필연성에서 기인한다. 원초적 개방성은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누리는 토양이자 뿌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지금까지 독보적으로 세계패권을 유지하는 까닭은 개방성의 원동력이 내재적 구성요건에서 유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오천년 역사를 통해서 한 번도 패권국으로 행세한 적이 없다. 좁은 국토, 지정학적 위치 등 주어진 환경 탓일 수도 있고, 적은 인구, 영웅적 리더십의 부재, 국론분열 등 사람 탓일 수도 있다. 우리보다 더 좁은 국토와 더 적은 인구를 가졌던 네덜란드, 한반도와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졌던 로마, 한민족보다 더 적은 인구를 가졌던 몽골 등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뻔히 보고도 앞뒤가 맞지 않는 그런 구차한 이유를 댈 수는 없다. 로마와 몽골이 초창기부터 국론통일이 항상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우리 역사에 영웅이 없었다고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역사에서 세계패권국의 공통분모로 추출해본 개방성은 일관성 있는 기준으로 여전히 유용하다. 우리가 자랑하는 단일민족국가라는 특성이 오히려 개방성을 가로막은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병자호란의 삼전도 굴욕과 구한말의 한일합병은 폐쇄성의 종결자다. 개방성이 국가 번영의 요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 나라가 극히 어지럽다. 동맹국인 미국과도 서먹서먹하고, 이웃인 중국, 일본과도 틀어졌다. 폐쇄적인 민족주의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꼴이다. 국민들이 양쪽으로 갈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극한상황까지 왔다. 거의 내란수준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폐쇄성이 국정기조로 부상함에 따라 남쪽끼리도 마음을 열지 못한 까닭이다. 폐쇄성을 접고 포용과 관용이라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때다. 서로 마음을 여는 것이 사는 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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