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법칙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태풍이 지나간 들녘에는 어느새 평화로운 풍경이 돌아왔다. 여기저기 알곡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락 열매들을 보니 저것을 어찌하면 좋으랴 싶다.

가을이 되자 문화행사가 풍성하다. 8월에 시작한 대구 오페라 축제가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이 있을 때, 가끔 의료지원을 나가게 되어 빼곡한 일정에서도 모처럼의 여유를 부리며 부담 없이 아름다운 공연과 고운 선율의 음악을 접하게 되어 더 의미 있는 가을이 된 것 같아 흐뭇하다.

사노라면 누군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가정에 있는 이는 가정을 지키느라 늘 시간과 싸움이고 밀려드는 업무와의 씨름이지 않던가. 가을이 되어 써늘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대는 요즈음 같은 날이면, 뭔가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 마음으로 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인다.

오랜만에 대청소를 계획했다. 하나하나 끄집어내다가 금세 지치는 나에게 남편은 동영상 하나를 꼭 보고 다시 시작하자고 하였다. 아이젠하워 법칙이라는 영상이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임 시절 사용했던 방법으로 무작정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먼저 네 가지로 분류한 다음에 처리했다. 그의 분류는 A. 긴급하면서도 중요한 일, B. 중요하지만 긴급하지는 않은 일, C. 긴급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일, D.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 4개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일 먼저 ‘긴급하면서도 중요한’ A를 처리했다. 긴급하긴 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C의 경우 ‘직접 처리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위임했다.’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 D는 처리하지 않고 버렸다. 그는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인 B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이 일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긴급한 일(A)이 되고 말기에 아이젠하워는 B를 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B는 지금은 긴급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 허둥대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한 방법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그는 많은 일을 하면서도 늘 마음의 여유를 찾아 즐겁게 일하였다고 한다.

이 원칙이란 정말 어지럽고 복잡한 상태를 간단하게 정돈해 주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그의 책상 옆에는 4개의 서랍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서류를 4가지 형태로 분류했다. 어떤 일을 할 때 ‘우선순위’를 정하여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니.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화면의 남자는 일본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말을 인용했다. 소노 아야코는 “세상일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어서 한 가지라도 이뤄지면 좋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때를 위해 희망의 순서를 매겨둬야 한다.”는 구절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허둥지둥 일하느라 헉헉대던 주인공 남자도 “꼭 해야 하는 것, 시간이 급한 것부터 먼저 하고 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텐데.”라고 한다.

꿈과 희망도 일단 순서를 정해 놓으면 좋지 않겠는가. 일이든 생각이든 한꺼번에 쏟아지면 병목처럼 꽉 막히는 현상이 생겨 통로가 막혀버리는 일도 있지 않은가. 일의 순서, 생각의 순서, 희망의 순서가 그래서 필요할 것 같다. 개인의 삶도 때로 병목현상이 생기는 일이 허다한데. 큰일을 도모하는 지도자들은 무슨 수로 하루하루 버텨낼까 싶다. 한꺼번에 이일 저일, 오만가지 다 챙기려다 보면 며칠을 버틸 수 있으랴 싶다.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도 예외 없이 이런 고민을 접했던 것일까. 그는 일하기 전 명상을 하고. 하루를 마칠 때 명상을 하며 하루를 돌아보았다고 하니 말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네 개의 서랍을 꼭 기억하고 일하면 좋으리라. 급하고 중요한 것, 중요하나 긴급하지는 않은 것, 긴급하나 중요하지는 않은 것,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것 네 가지로 나누어 서랍에 분류해두고 직접 할 것과 위임할 것을 나눠 일을 처리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가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유 있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아이젠하워의 법칙’ 덕분은 아닐까.

아이젠하워 법칙에 의하면 일을 정리 정돈할 때는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하려는 마음이나 습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분담하고 함께 일한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조언 같다. 그의 법칙은 한마디로 무턱대고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요령 있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요청해 가면서 함께 하라는 의미이지 않겠는가.

오늘 주변을 정리 정돈해가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이 생겨나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에게도 아이젠하워 법칙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 가을에 불쑥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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