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또 다른 생각

또 다른 생각/ 이수익

뭉개지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을 사는 데에는/ 내가 각을 지움으로써 너를 편안하게/ 해줄 수도 있다. 선창에서/ 기름때 묻은 배끼리 서로 부딪치듯이/ 부딪쳐서 조금 상하고 조금 얼룩도 생기듯이/ 그렇게, 내 침이 묻은 술잔을 네가 받아 마시듯이/ 자, 자,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술이나 마셔!/ 취한 기분에 붙들려 소리를 버럭 내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시간도 참으로 소중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도 소중하다/ 시퍼렇게 가슴에 날을 세우고/ 찌를 듯이 정신에 각을 일으켜/ 스스로 타인 절대출입금지 구역을 만들어 내는 일/ 그리하여 이 세상을 배신하고 모반하는 일은/ 네게는 매우 소중한 덕목이다/ 안락한 일상의 유혹을 경계하고 저주하라, 그대/ 불행한 시인이여.

- 시집『꽃나무 아래의 키스』(천년의시작, 2007)

서로 주장이 달라 각을 세워 말다툼 하더라도 ‘이게 무슨 먹고 살 일이라고’ 그 생각이 파고들면 한 발 물러서기도 하고 ‘내가 각을 지움으로써 너를 편안하게 해줄 수도 있다’ ‘그렇게, 내 침이 묻은 술잔을 네가 받아 마시듯이’ ‘자, 자,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술이나 마셔!’ 그렇게 세상은 굴러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적당히 넘어가는 게 신상에 이로운 경우가 많고, ‘뭉개지는 것도 방법’인 일도 적지 않다. 더구나 너의 편안을 위해 나를 망가트려 각의 날을 지우는 것은 어쩌면 겸손, 유연, 양보, 비움 등등으로 요약되는 선한 덕목이기도 하다.

‘선창에서 기름때 젖은 배들끼리 서로 부딪치듯, 부딪쳐서 조금 상하고 더러 얼룩도 생기듯’ 다투다가도 네 숟가락 휘젓던 된장국물을 내가 후루룩 떠마시듯이 내가 먼저 ‘졌다 졌어!’ 두 손 들고 각을 허물어뜨리는 것도 파국을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 시는 ‘그래서는 안 되는 시간’과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의 ‘또 다른 생각’에 주목하며, 그것에 더 후한 가치를 쳐주고 있다. 시인이란 족속은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시퍼렇게 가슴에 날을 세우고 찌를 듯이 정신에 각을 일으켜 스스로 타인 절대출입금지구역을 만들어내는 일’

‘그리하여 이 세상을 배신하고 모반하는 일’의 ‘매우 소중한 덕목’은 시인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타성에 쉬 물들지 않으며 ‘안락한 일상의 유혹을 경계하고 저주’한다. 그들은 대개 비주류며 집단추종을 거부한다. 묻고 따지지 않는다며 누구든 오케이라는 권유를 사양한다. 부조리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롭고 진실한 양심의 외침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들은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그러나 현실상황의 뚜렷한 인식이 부족할 경우에는 자칫 그 생각이 옹알이로 그치거나 악화에 의해 구축된 양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금의 조국 사태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 공정과 불공정이란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한다. 결자해지하라며 대통령에게 조국 장관의 해임을 요구한다. 검찰과 언론을 통해 유통된 정보들이 비대칭으로 부풀려지면서 사태를 확산시켰다든가, 처음부터 조국을 지렛대 삼아 정치적 생명력을 충전시켜보자는 일부 야당의 전략이 통했다는 사실 등을 간과한다면,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게 무슨 먹고 살 일이라고’ 서초동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우아한 지성보다 원시적 감각의 또 다른 우려가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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