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시월

시월/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중략) /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석등(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중략)/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 월간「현대문학」195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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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즐거운 편지’와 함께 나이 스물 황동규 시인의 ‘현대문학’ 등단작이다.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한다. 이때 시인이란 꼭 시를 쓰지 않더라도 눈동자에 힘 빼고 하늘의 뭉게구름을 얼마간 바라본다든지 단풍이나 노란 은행잎, 또는 낙엽에 사유가 잠시 걸쳐있는 것만으로도 시인의 성정을 갖는다는 뜻이리라. 더불어 이 땅에 살다간 혹은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시인들이 남긴 가을의 절창 가운데 한두 편 되살려보려고 애쓴다면 우리 모두 이 가을에 시인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으리.

그러는 동안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첫 소절이라도 문득 떠오른다면 그대에게 붙여진 시인의 칭호는 자랑스럽기도 하여라.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된다. 물론 한 편의 시로 가을을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빛나는 가을의 시어들이 있기에 가을은 더 아름답고 눈물겨운 계절이다. 살면서 시인의 촉촉한 습성으로 가을을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히 시인이다.

하늘은 더 푸르러 보이고 산은 보다 확연해진다. 지긋지긋한 ‘조국’의 파장과 꼬리를 물고 뿅뿅 두더지처럼 솟아오르는 어이없는 뉴스들에서 벗어나 가까운 산에라도 한번 올라보자. 그 산의 물이 덜 든 단풍잎 하나 달려와 당신께 속삭이며 추파를 던지리라. ‘우리 활활 불 한번 질러보는 건 어떤가요?' 그럴 때 태풍이 몰아쳐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고약한 마음도 스르르 사라질 것이고, 광장에 모인 숫자에 국가의 명운이라도 걸린 듯, 멀쩡한 하늘에 태풍을 일으켜 나라를 뒤엎어보자는 심산 따위도 어느새 마음 안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시월의 강물’이 저토록 짙어지는데 공연히 국력이 낭비되고 사람들마다의 진을 빼며 에스컬레이터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비탈에서 간신히 버티던 욕망들도 이제는 속절없이 계곡으로 쏟아져 내려올 때다. 단풍 들고 이어서 낙엽이 계곡의 골들을 메우겠지만 그들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으리라. 사람과 다람쥐에게 미처 눈에 띠지 않은 밤톨과 도토리들이 햇살에 말라가면서도 나무 하나씩을 살려낼 것이다.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에도 안토시안이 풍부한 잎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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