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하늘/ 김석규

철새 돌아오는 때를 알아 누가 하늘 대문을 열어 놓았나/ 태풍에 허리를 다친 풀잎들은 시든 채 오솔길을 걷고/ 황홀했던 구름의 흰 궁전도 하나둘 스러져 간 강변/ 시월 하늘 눈이 시리도록 너무 높고 맑고 푸르러/ 어디에 하늘 한 만 평쯤 장만할 수 있을지/ 주민등록증하고 인감도장을 챙겨 들고 나가 봐야겠다.

- 시집 『백성의 흰 옷』(신라출판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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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이 되면 말발굽에 고인 물도 마실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시월의 가을은 그만큼 기상환경이 좋아져서 하늘이 맑고 푸르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시월 하늘이 유난히 ‘눈이 시리도록 너무 높고 맑고 푸르러’ 하늘에 안기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무얼까. 기상과학을 한번 들여다보자. 적란운 등에서 보듯 여름하늘의 구름은 수직으로 발달하게 되고 때에 따라 집중호우를 쏟아낸다. 반면 가을하늘의 구름은 드러누운 모양인 수평으로 발달한다. 새털구름 양떼구름이 이에 해당하며, 이는 대기가 매우 안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대기가 안정되면 지상의 먼지가 상공으로 잘 올라가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가을하늘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랗고 높게 보인다. 우리 눈은 태양빛 중에서 가시광선만을 볼 수 있다. 가시광선은 대기를 통과하면서 대기 중의 질소, 산소 분자들에 의해 빛이 흩어지는데 산란 정도는 보라색이 가장 양이 많고 파란색·녹색·노란색·주황색·빨간색 순서로 이어진다. 19세기 영국의 레일리가 처음으로 ‘빛의 산란’ 이론을 바탕으로 하늘이 푸른 이유를 설명했다. 보라색은 우리 눈에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파란색을 주로 인식하여 하늘이 푸른빛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은 왜 흰색을 띠고 있을까. 파도의 물보라나 흰 구름은 여러 크기의 물방울로 되어 있다. 크기가 다른 물방울들은 진동수가 다른 빛을 산란시킨다. 큰 물방울은 낮은 진동수인 빨강 쪽의 빛을, 작은 물방울은 높은 진동수인 보라 쪽의 빛을 산란시킨다. 그 결과 모든 빛을 산란시켜 우리에게는 흰색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모든 색의 빛을 합하면 흰색이 된다는 말씀을 기억한다. 이렇게 기상과학을 알고 보면 그저 감상적으로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올려다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와 과학적 규칙들이 새삼 더 신비롭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갔지만 대체로 가을엔 강수량이 줄어들고 습도도 낮아진다. 또 태양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지표면 부근에서는 강한 바람이 생기지 않아 대기층의 대류가 안정적이다. 상공의 미세먼지도 낙하해서 하늘은 더 맑아진다. 이런 하늘 아래 산하는 어떤가. 설악산에는 이미 단풍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가을 산의 풍경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강물, 그리고 높이를 알 수 없는 푸른 하늘은 불현듯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우리는 너무 가열 차고 팍팍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의 시월 하늘을 올려다보고 오늘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품어보는 어떨까. ‘어디에 하늘 한 만 평쯤 장만할 수 있을지 주민등록증하고 인감도장을 챙겨 들고 나가 봐야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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