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우리는 준비되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개혁이라고 답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나 금융시장 등과 같은 민간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뜨거운 감자가 된 사법개혁을 비롯하여 교육이나 의료보험 및 공적연금 제도, 행정 규제 등과 같은 공공영역에 이르기까지 앞에 어떤 형용이 붙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되는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열렬한 환영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혁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결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는 이른바 냉소적인 태도다.

우선 개혁이라는 말의 대척점에 자리하는 부패에 대한 누적된 증오심과 그 청산, 그리고 청렴한 미래사회에 대한 열망과 그것이 가져다 줄 새로운 기회에 대한 기대가 큰 집단은 열렬히 환영할 터이다. 정경유착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의 권리를 악용해 사익을 추구하려는 공공부문은 물론이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각종 편법과 꼼수를 이용한 민간부문의 이기적이고 과도한 사익 추구가 우리 사회나 개개인으로부터 앗아갔거나, 앞으로 당연히 누려야만 할 각종 기회를 되돌려 받기 위해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일 터이다. 이미 지난 수십 년간 우리를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방황하게 했던 이 말에 대해 최근 들어 유독 우리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공이든 민간이든 부패가 발각되거나, 부패청산을 위한 개혁을 방해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엄청난 민중의 분노에 직면하게 되어 사회적 갈등을 극한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발생하는 부패는 부패 당사자인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성을 낮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더욱 더 경계의 대상이 된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국내 유력 민간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청렴도가 OECD 평균 수준만큼만 개선된다면 연평균 0.7%p 정도의 명목 GDP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공공부문의 부패가 그만큼 우리 경제와 사회에 큰 부담을 준다는 것이고, 장기간에 걸쳐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지불해 온 우리 사회가 개혁에 대한 무조건적인 것처럼 보이는 뜨거운 지지를 보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개혁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집단도 적지 않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위정자들 중에 개혁을 논하지 않은 자가 있었던가를 생각해보고, 개혁을 논하면서 제대로 우리에게 그 성과를 보여준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만약에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손 치더라도 우리 사회의 전체 최적화가 아니라 부분 최적화에 그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도와 행위 주체 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혁 전이나 후나 여전히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지속되거나, 개혁 수행 주체가 부패의 당사자가 되는 꼴이 반복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대가 일소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누가 개혁을 이야기를 하더라도 두터운 암반층을 이룬 냉소론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녹이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개혁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개혁은 말 그 자체가 의미하듯 스스로를 채찍질할 정도(改)의 고도의 도덕성을 갖추고, 곤충처럼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변하듯 기존의 모습과 성질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革)할 때까지 갖은 사회적 저항에도 굴하지 않는 담대함을 가진 자나 그 세력만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의 우리 사회는 그런 자나 세력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부패가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는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전가하지 않음으로써 후생수준에 피해를 주지 않을 제대로 된 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과 도덕성, 담대함 그리고 냉소론자들의 마음조차도 녹일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춘 이들을 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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