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19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신앙의 뿌리’



동상 박순향

구순이 다 되도록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어머니, 당신의 신앙의 진원지인 황씨부인당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의 두터운 믿음과 나의 내면에 시나브로 생성한 신앙의 뿌리를 캐내보리라.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헤치며 황씨부인당을 향했다. 활엽수에 매달린 빗방울이 마냥 싱그럽다. 올라가는 오붓한 길목에 가지런한 돌탑들이 길손을 맞이한다. 탑들은 크고 작은 돌들을 서로 껴안았다. 오르내리는 중생들이 쌓아 올린 탑이다. 돌 하나에 소망을 얹고 돌 하나에 번뇌를 털어냈을 것이다. 하찮은 돌멩이지만, 쌓을 때마다 종교적 의식을 치르듯 심충(深衷)을 다했을 터다.

오솔길 가녘엔 황씨부인당을 수호하듯 무속인의 상징물인 오색천이 나부낀다. 그 형상은 오색천을 온몸에 두른 장승같은 ‘세르게’들이 바이칼 호수, 알혼섬의 샤먼 바위를 호위하는 형국이다. 신적 존재인 황 씨 부인도 샤먼바위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음은 틀림없겠다.

골짜기에서 꽹과리 징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누가 염원을 담아내는 굿판이리라. 문득 드라마에서 본 굿 장면이 떠오른다. 진하게 분장한 무당은 온몸으로 춤을 춘다. 신내림을 받았는지 느릿한 춤사위는 북소리에 편승하여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다. 비손하는 사람의 호흡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콩죽 같은 땀이 그들을 흥건히 적시고 파김치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소름이 오스스 돋아나지 않았던가. 무속인이 일월산에 몰려듦은 황씨 부인의 영향력이 클 것이다.

잡목이 둘러쳐진 곳에 황씨부인당이 고즈넉이 엎드렸다. 부인당은 일월산 일자봉 정상에 있는 신당이다. 범접하지 못할 그분의 모습은 어떠할지 부인을 조심스레 올려봤다. 눈이 마주쳤다. 두렵게만 여겼던 것은 기우였다. 엷은 미소와 온화한 자태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다. 평소 점술·샤먼 신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속 좁은 편견에 얼굴이 붉어진다.

황씨부인당의 전해오는 여러 설화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순조 조에 일월산 아래 황씨 성을 가진 아리따운 규수가 있었단다. 두 남자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였다. 연적(戀敵)을 이긴 신랑은 의기양양했으리라. 첫날밤이었다. 설한 바람에 문풍지가 크게 떨었다. 초야를 치르고자 호롱불을 끄는 순간, 날 선 칼날이 창호지에 어른거렸다. 신랑은 연적의 날이 자기를 노리는 줄 알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창호지에 비친 댓잎이 비수로 보였을 모양이다. 새 장가를 든 신랑은 아들딸을 생산했지만, 낳은 족족 비명횡사했다. 구천에 떠도는 황씨 부인의 원혼 탓이란다. 여인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신랑이 신부를 찾았을 때, 부인의 자태는 첫날밤 그대로였다. 열녀는 지아비를 두 번 고치지 아니한다는 성현의 말씀을 몸소 실천에 옮겼을 터. 족두리를 쓴 채 오지 않는 낭군을 기다린 신부의 속은 까맣게 탔으리. 신랑은 시신을 현재 위치에 옮기고 사당을 지어 영혼을 위로했다. 제문을 소지(燒紙)할 때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석고상처럼 붙박였던 부인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는 내용이다. 부인은 언젠가는 떠난 낭군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기에 망부석 되어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부인이 실천한 정절·예지력(豫知力)·영험이 있었기에 신적 존재로 추앙을 받았으리.

단아한 황씨 부인을 향해 두 손을 맞잡았다.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짧지 않은 인생 여정,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질곡을 여러 차례 겪지 않았던가. 부인에게 합장하는 동안 엉킨 실타래가 한 올씩 풀리고, 마음에 일었던 파문이 잔잔해짐을 느낀다. 신앙의 힘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도처에 굿당이 산재한 선녀탕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선녀탕은 거울처럼 맑았다. 기도자는 이곳에서 몸을 정갈하게 하였으리. 움푹 팬 너럭바위 한편에 양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범부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면 모두가 기도처다. 황씨부인당을 중심으로 일월산 골짜기는 초 향이 그윽하다.

친정엄마도 황씨부인당을 자주 찾았다. 이곳에서 가정의 평화와 일곱 남매의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겨우 한글을 깨우쳤다. 불경이 가끔 당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불가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지 못했음을 익히 안다. 그저 주문처럼 외웠을 따름이다. 당신의 마음 머무는 곳이면 모두가 기도처였고, 거기에서 마음에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엄마가 치성 드린 황씨 부인 영전에서 오늘은 당신을 위해 내가 합장한다. 변죽만 올린 나의 기원과 원력(願力)을 다한 어머니의 기도 함량을 어찌 저울질 할 수 있으랴!

우연인지 필연인지 시어머니 신앙도 친정엄마와 빼닮았다. 시어머니는 남편인 아들을 낳고자 민속신앙에 의지했단다. 자식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갓난 아들을 팔공산 수태골의 큰 바위에 팔았다. 바위는 소위 대모代母 격이다. 한낱 바위가 무슨 영험을 지녔겠냐만, 굳은 믿음은 시어머니 마음을 지배했을 것이다. 자식이 장가들 때까지 음력 초하루 보름이면 바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촛불을 켰다고 했다. 결혼한 뒤로는 그 일을 우리 부부가 맡았으니 물 흐르듯 믿음도 대물림을 하는 모양이다.

화엄경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지 않았던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부류만 아니면 무슨 신앙인들 어떠리. 마음 중심이 중요한 것을. 하산길이다. 뭇 사람의 소망을 담은 돌탑들이 나그네를 배웅한다. 황씨 부인의 고운 눈매가 나의 정수리에 선명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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