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는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다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적이 당신을 한 번 돕게 되면, 당신을 더더욱 돕고 싶어 하게 된다(Enemies who do you one favor will want to do more)’.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의 자서전에 남긴 글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치인이다. 한 일간지의 인터넷 판에서 프랭클린이 정적을 친구로 만든 기발한 묘책을 썼다는 기사를 보고 손바닥을 쳤다. 지금 좌우로 나뉘어 으르렁거리는 한국의 정치인들이라면 한 번쯤 꼭 되새겨 봐야 할 에피소드여서다.

프랭클린이 주 의원 시절의 이야기다. 그는 시시콜콜 자기를 물고 뜯는 정적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고 싶어 했다. 고민 끝에 묘안을 생각해냈다. 정적이 당시 값나가는 책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프랭클린은 며칠간만 책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며 매우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 정적은 책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속 좁은 사람으로 소문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은 며칠 후 책을 돌려주면서 진심을 담아 감사의 편지도 함께 전해주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저 값비싼 책을 며칠간 빌려주는 작은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프랭클린에 대한 미운 감정이 사라졌던 것이다. 이 일이 있고나서 두 사람은 평생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이 일간지 기사는 이를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라고 했다. 도움을 준 사람이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호의를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상대방도 진심을 알아주는 대표적 사례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상대를 헐뜯고, 모욕을 주고,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기술적인 묘안을 찾을 생각은 없고 막말만 남아 있다.

그 막말마저 지나쳐 감히 인용하기도 꺼려질 정도다. 오는 말이 험하니까 가는 말은 더 험해진다. 듣고 있는 국민들은 화가 치민다. 저급한 이들이니까 저급한 말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치부하고 때로는 흘려듣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분이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국민들의 힘으로 법안을 발의할 수만 있다면 정치인의 막말금지법이라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싶다.

이 상태에서는 오직 자기들끼리의 싸움만 중요하지 일반 국민들의 안위나 걱정은 전혀 안중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임대 현수막을 내건 상가가 부지기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사육농가들은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있는 상태 아닌가.

자기들끼리의 싸움이 지나치다보니 이젠 일반 국민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인의 한마디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한줄 글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옳네, 네가 틀렸네 싸움판을 벌인다. 이 싸움판에 또 정치인이 끼어들어 난장판을 이룬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행동이 늘 선(善)이며 정의(正義)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연히 상대는 악(惡)이고 부정(不正)이라고 몰아세운다.

이쯤이면 중국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이야기하는 가장 등급이 낮은 정치, 가장 못난 정치에 해당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리더의 통치 형태를 5개 등급으로 나누어 소개했다.

1등급은 선자인지(善者因之)다.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정치로 순리(順理)의 정치라 할 수 있다. 2등급은 이도지(利道之)로서 백성을 이롭게 하여 잘 살게 만드는 정치다. 3등급은 교회지(敎誨之)라고 해서 백성을 가르쳐 깨우치게 하는 훈계형 정치다. 마지막 4등급은 정제지(整齊之)로 백성들을 일률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위압 정치다.

사마천은 이 4개의 등급 외에 또 하나의 최하의 등급을 추가했다. 그것은 최하자여지쟁(最下者與之爭)으로 백성들과 다투는 정치다. 마땅히 백성들을 이해시켜 스스로 따르게 해야 할 일을 갈등을 일으키며 오히려 고통스럽게 하는 통치형태라고 했다.

과연 우리나라는 사마천이 이야기하는 이 다섯 가지 통치 형태에서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최하 등급인 ‘가장 못난 정치’가 아닐까 두렵다.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제발 곰곰이 생각 좀 해봐주길 바란다. 아니면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를 낼 수 있는 묘수라도 찾아주든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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