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김둘

그 마을에 들어서자 꽃향기가 그득했다. 봄꽃들이 여기저기서 한창 피었다. 마을은 나지막하지만 당당한 기상을 품고 있었다. 작은 동산은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버선을 닮아 있다. 그 아래 기와지붕들은 근엄하면서도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다. 달 밝은 밤이면 그 기와지붕의 맵시가 더욱더 아름답게 길게 드리울 것이다.

아름다운 시 ‘고풍의상’은 이 정기를 받아 태어났구나. 선(線)은 선(善), 선(善)은 선(仙)이어라!

주실마을… 마을의 기운은 시인 조지훈을 다소곳이 품어 주고 있었다. 어디에도 과함 없이 수수하고 단정하다.

그의 시를 연모한 지 삼십 수년 만에 드디어 그의 고향마을에 왔다. 그의 시를 사랑해 마지않아‘승무’를 외우며 혼자 들길을 걸었던 사춘기 시절의 날들이거나‘풀잎단장’을 읽으며 싱그러운 영양의 숲을 상상하며 늘 시인의 고향마을은 어떨까 궁금해 하던 일이라거나‘고풍의상’을 읽으며 참으로 어떻게‘선(線)’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지난 세월 속에서도 결코 와 보리라 생각을 못했던 조지훈의 마을이다.

어느 날 나는 너무 늦게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시인이 시인인 건 바로 그가 살았던 유년의 공간 내지는 그의 회한을 담아둘 만한 깨지지 않는 질그릇 같은 자신만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공간이란 얼마나 거룩한 모태인가, 태초에 어머니 자궁에서 빠져나와 조그만 뼈와 한 모타리 살덩어리들을 의지하며 지냈던 곳,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 육신의 그릇이 되어 주는 곳.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 살 적에 그 사람 본성대로 살아가면서도 가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바로 이‘환경’을 지배하는 공간의 역할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인에게는 먼 과거로의 장소, 자기만의 특별한 아지트가 존재한다.

자신의 삶은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로는 작은 집 안방에서, 때로는 부엌의 한구석에서, 또 때로는 자기만의 뒷산 동굴이나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좁디좁았던 도랑의 물풀들 사이를 헤집던 어느 강의 모퉁이, 논두렁이나 때로는 발가벗고 뛰어놀았던 해변가, 친구와 헤어지며 눈물 흔들며 손 흔들었던 학교 교문 앞…….

마을 뒤의 조그만 산을 따라 올라가니 조지훈의 시를 새겨놓은 시비(詩碑)가 구름다리처럼 출렁출렁 산길 저 끝까지 즐비하다. 시비 하나하나마다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녹아 있는 듯 긴장미가 느껴진다.‘고풍의상’의 그 아름다운 선을 표현한 듯 시를 새긴 돌 겉면의 부드러운 곡선도 덩달아 부드럽다.

그의 어떤 시들은 많이 알려졌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가히 상상키 어려운 산고를 겪어내야 하듯 시 한 편 한 편 써 낼 때마다 시를 쓰는 고통도 대단했으리라. 시비가 산등성이를 따라 사람의 길을 올라가니 시비 자체가 산의 디자인이 된다. 산이라는 치마에 수놓은 점점이 아름다운 자수처럼 섬세하면서도 그 기품이 고고하다.

5월의 새들과 벌들과 나비, 그리고 그것들을 유혹하는 산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조지훈 시문학공원에서 나는 천천히 그의 시를 읊어 본다. 시를 음미하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싶어 읊조려보니 내 목소리에 덩달아 박자를 맞추어 주는 바람과 나뭇잎들의 찰랑거리는 소리들. 조금 더 돌아가니 조지훈의 동상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그의 표정은 장엄하며 의기롭다. 그 옆으로 유명한 시들이 새겨져 있다. 그 시들은 조롱조롱 그의 곁에 매달려 있다.

마을 건너 시인의 숲으로 간다. 금강소나무라 했던가? 크고 멋진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이곳은 2008년 제9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수상한 곳이다. 그러해서인가, 숲이 싱그럽고 고즈넉하며 울창한 나무들이 검은 그림자를 땅바닥에 드리워져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포근하고 시원하다. 이런 멋진 숲을 나는‘玄林(검은 숲)’이라 불러보고 싶다. 이 태초의 혼돈 같은 신비로운 검은 기운이 땅 아래 촉촉이 스며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끄는 듯 기운이 강하다.

달 밝은 밤, 기와지붕의 맵시가 더욱더 아름답게 길게 드리워져 있을 선(線), 착하고 부드러운 능선 사이로 꽃향기처럼 번져 나와 사람마음을 이끌어주던 선(善), 신선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검은 숲의 신비로움, 이 신선이 노닐다 사라져간 영험한 영양 일월의 주실마을의 발걸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시인의 선(線), 사람들의 선(善), 검은 숲의 선(仙)이여!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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