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대구일보 2019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금상 - ‘불목(佛木)’



나식연
굽이쳐 흐르는 고갯길. 하늘과 맞닿은 길에는 세상사 번뇌가 끼어들 틈이 없다. 무소유의 길을 거슬러 올라 만난 절집, 그 앞에서 어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또 굽힌다.

구름과 바람만 드나들 것 같은 깊은 산사. 예불을 드리듯 봄도 절 마당 가득 온기를 풀어 놓고 숨죽였다. 극락보전으로 들어선 어머니가 가까스로 꿇어앉는다.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을 봉양하는 모습이 마치 부처님 전에 타오르는 향을 연상케 한다. 진자리는 내 몫이요 마른자리는 자식들 앞길이길 바라는 당신의 기도를 부처님은 말없이 듣고만 있다.

어머니가 기도하는 동안 경내를 휘둘러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외톨 나무가 눈에 와 닿는다. 푸르고 울창한 이파리도 아름드리 줄기도 가지지 못한 쇠약한 노거수는 팔백 년 된 모과나무였다. 한쪽 부분이 시멘트로 메워진 몸통은 옹이로 가득했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자리엔 잡풀이 무성했다. 길들지 않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도덕암을 지켜온 나무가 엄숙함과 채움과 비움을 가르친다.

나무는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불경을 귀담아들으며 몸으로 익혔을까. 한적한 산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염불 소리밖에 뭐가 더 있었으랴. 꺾이지 않고 휘늘어진 형상조차도 깨달음의 경지로 보인다. 세월이 흐를수록 풍미해지는 뭇나무에 비해 메마른 몸집은 범속을 초탈한 수행자 같다.

뿌리 깊은 나무로 생을 보내는 모과나무가 경이롭다. 여느 보호수 같았으면 우람하게 서 있을 법하나 이곳의 팔백 살 먹은 나무는 열심히 살아도 표가 나지 않는 굳센 어머니 같은 나무다. 점점 윤기를 잃고 굳은살만 남은 어머니처럼 나무도 옹이투성이의 삶이었음을 보여준다.

나무는 고려 광종(968년) 때 중국에 유학하러 갔던 혜거대사가 몰래 들여왔다. 약이 귀했던 첩첩산중의 수도승을 위해 먼저 이곳에다 심었다. 다행히도 뿌리를 잘 내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잘 익은 열매는 기침이 심한 승려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전설은 아스라한데 여전히 절을 지키고 선 늙은 나무를 부드러운 바람이 휘감아 돈다.

기도를 끝낸 어머니가 불편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나무를 향해 정숙히 고개를 숙인다. 나무는 사계절을 견디며 성찰한 모습으로 향기 나는 열매를 내주고, 어머니는 울퉁불퉁한 자식이어도 정성을 다해 세상에 내놓았다. 인간 세상과 자연 사이에서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와 가난의 상처를 지닌 어머니가 함께 서 있다. 긴 세월 동안 어머니에게 위안이 되었을 모과나무, 팔백 년에 또 한 해를 보낸다. 고마운 일이다.

아흔 고개를 바라보는 어머니, 당신에겐 은근한 향이 있었다. 썩어가면서도 제 향을 내는 모과처럼 몸이 망가져도 향내를 잃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중심을 잡아가도 은은함은 그대로였다. 돌이켜보니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게 아픈 몸보다 더 무서웠으리라. 구부정한 등을 볼 때마다 가슴에 통증이 인다.

어머니가 다시 허리를 굽히고 돌아선다. 햇살과 바람, 자연의 공덕을 받아 내년에도 푸르른 자태로 우리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 어머니는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 위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앙상한 나무도 뼈와 살가죽만 남은 어머니도 처연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난전에서 모과 몇 개를 샀다. 향이 방 안 가득 퍼졌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거뭇한 반점이 올라왔다. 처음엔 서로 맞닿는 살갗 부분만 그렇더니 차츰 여기저기로 번졌다. 거북한 냄새가 없었고 겉모양도 괜찮아 며칠을 더 두고 보았다. 검은 얼룩이 노란 제 몸을 다 점령했다. 그런데도 고유의 향을 내뿜는 것을 보고 나를 돌아보았다.

내게서는 어떤 향취가 날까. 모과 같은 냄새는 아니어도 악취만은 피우지 말아야겠다고 속다짐했다. 하지만 비우고 비워도 차오르는 욕심 때문에 사람 냄새는 얼룩지기 일쑤였다.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고자 어머니를 따라 부처님을 찾았다. 어진 눈빛이 자신의 냄새도 스스로가 만들어 낸 업이라고 일깨워준다.

어머니를 부축해 도량을 나선다. 아직은 공기처럼 곁에 있는 어머니와 예순이 넘은 아들이 함께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해마다 모과는 성스러운 신의 품에서 익어 가겠지만, 어머니는 나날이 삶을 정리하며 살아갈 것이다. 팔백 년을 살고도 가지 끝 수액을 모아, 귀한 열매를 살찌워 내놓는 나무 앞에서 숭고함을 만났다. 올가을에도 튼실한 열매로 불단 위에 보시되기를 빌고 또 빈다.

칠곡 도덕암에는 오래된 모과나무 한 그루가 불목佛木이 되어 세상을 굽어본다. 자태는 동안거를 막 끝낸 고승高僧 같으나 심장은 소승少僧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천년의 수명을 더 준다 해도 뜨거운 피돌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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