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얼마 전 간호사가 국제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전달했다. 인중수술을 한 번 더 하려고 멀리 미국에서 그것도 대구까지 온다고 한다.

필자가 소속된 병원의 인중수술이 꽤 유명해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SCI급 인중수술 논문을 발표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러 나라에서 교포들과 드물게는 의사들도 내원해 수술을 받고 돌아가곤 했다.

어떻게 이 수술을 알아서 머나먼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제는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상이 점점 가까워지다 보니 비행기 타고 와서 수술하고 돌아가는 일이 그다지 신기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온다는 그 환자를 떠올리면서 마음속에 작지만 깊은 울림이 생겼다. 그는10년 전 필자에게 인중수술을 한 적이 있던 환자였기 때문이다.

10년 전 봄의 일이다. 미국에서 온 30대 여성이 병원을 방문했다. 인중이 길어 얼굴이 길어 보이고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이유로 고민하고 있던 중, 마침 주위 교포들로부터 소개를 받고 멀리 대구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인중수술을 시작한 초기라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수술법을 고민하고 있던 중, 미국에서 온 환자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났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여러 성형외과 논문과 교과서를 며칠 동안 들여다보고 참고해서 좀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서 수술을 마쳤다. 필자의 초기 인중수술이었다.

환자는 수술 후 상처관리를 꼼꼼하게 하면서 좋은 경과를 유지했고, 이 후 꾸준히 메일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경과를 확인했다. 1년 뒤 마지막으로 사진을 보낸 후 만족한다는 안부와 함께 당분간 소식이 없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첫 번째 수술을 시작한 이래 이제 10년이 넘었다.

그 이후 인중과 입술 부위의 부조화에 대한 교정방법이 흔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이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면서 수많은 경험을 쌓게 되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수술결과도 안정되고 흉터를 별로 남기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수술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단순히 인중이 길어서 오는 경우 이외에도 코와 입술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경우, 언청이 수술 후의 재수술, 입술의 비뚤어진 경우 등 다양한 경우의 교정수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면서 인중의 길이를 줄여서 얼굴이 작아 보이게, 나이가 젊어보이게 변화를 만들어주는 수술을 하면서 경험을 쌓다 보니, 이제는 사람을 보면 코 아래의 인중과 입술 주위의 모습만 보아도 비례와 조화가 잘 맞는지 또 어떤 변화를 주는 것이 보다 좋은 얼굴이 될 것인지 저절로 감이 잡힐 정도가 된 것이다.

며칠 뒤, 병원을 들어서는 환자를 보는 순간 10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서 나이가 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예전의 그 눈빛과 미소는 그대로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예전의 챠트와 사진을 찾아서 비교해 보고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수술 후 관리가 잘 되었던지, 흉터도 별로 눈의 띄지 않았다.

다만,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인중의 길이가 다시 길어졌고, 입술이 처지고 주름이 많아져서 속상하다면서 이것도 같이 교정이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10년의 기간 동안 나아진 수술결과로 보답하기로 하고 처진 입술도 조금 더 젊어보이도록 만들어주리라 다짐하고 바로 수술준비를 시작했다.

인중의 길이를 다시 줄이고, 늘어진 입술 피부 일부를 제거하고 난 다음, 입술이 좀 더 도톰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수술 다음 날, 자신이 바라는 대로 정확하게 모양이 바뀌었다고 만족하는 환자에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일주일 뒤, 실밥을 모두 제거하고, 당분간 입술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겠다고, 앞으로도 나를 계속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인생을 바꿀 만한 인연이 몇 차례 찾아온다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인연은 필자처럼 이렇게 10년이 지나고 나니 이것이 인연이라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인연이 찾아올 때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만의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고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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