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 모습.
▲ 낙동강 모습.
이하석(대구문학관 관장)·강현국(시와반시 주간)·윤일현(대구시인협회 회장) 시인이 같은 날 시집을 출간했다.

‘시와반시 기획 시인선’으로 출간된 세 시인의 시집은 단일 소재의 시를 각각 25편씩 수록했다.

시집을 제안한 이하석 시인과 그 제안을 기획한 강현국 시와반시 주간은 “보통의 시집은 50편 전후로 구성되지만 이번 시집은 그 절반 수준이다”며 “이는 1시간 전후로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시집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또 우리 지역을 다룬 시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 과거 향촌동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향촌문학관.
▲ 과거 향촌동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향촌문학관.
◆이하석, 향촌동 랩소디

80년대 이후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한 이하석에 대해 비평가들은 ‘광물성의 시학’, ‘도시 시’, ‘하이퍼 리얼리즘’, ‘주관이 거세된 객관 묘사’라는 설명을 붙인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구 현안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작업을 해 왔다. 대구 10월 항쟁과 민간인 학살의 기억을 고통의 언어로 되살려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랜 시집 ‘천둥의 뿌리’(2016, 한티재)는 ‘이성의 힘’과 ‘자기 절제의 정신’을 동력으로 시를 써 온 시인의 수십 년의 인고 끝에 터뜨린 ‘거대한 울음’이자 ‘치열한 고발’이었다.

이번 시집 역시 지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다.

시인은 “향촌동은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중영과 대구부가 있는 곳이다. 향촌동은 대구의 번화가였는데, 특히 6.25 이후에는 유명한 술집거리였다. 피난 온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어울려 곤혹스러운 나날을 술로 달래던 곳이다. 그래서 ‘피난 문학의 거점’으로, 또는 ‘한국문단의 50년대 초반 무렵의 중심거리’로 꼽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향촌동이 번창하던 당시의 자취와 향수를 기억하고 있다. 근대와 현대의 공존 속에서 그런 자위들을 돌아보고 기억들을 떠올리는 지금은 노년으로 변한 당시의 단골들이 있게 마련이다.

향촌동 입구에 있는 대구문학관의 관장을 맡으면서부터 점심때나 퇴근 무렵 이 지역의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골목들을 어정거리며 기웃거렸다고 말한다. 이 낡은 골목들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돌아보는 ‘향촌동 랩소디’는 그런 기웃거림을 메모한 시들이다.

이하석은 “향촌동은 대구의 발전에 뒤쳐진 채 섬처럼 버려지거나 고립된 낡은 동네지만, 최근 들어 변화가 일고 있다. 이 골목에서 청춘을 보낸 이들의 향수심을 자극, 추억들을 공유하고, 사고파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기존의 공구골목과 신발가게 거리 등과 어울려서 꽤 인상적인 공간들로 바뀌고 있다”고 향촌동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강현국, 구병산 저 너머

시와반시 주간을 맡고 있는 강현국 시인은 1992년 시전문 잡지 ‘시와반시’를 창간해 한국을 대표하는 시전문지로 성장시켰다.

‘구병산 저 너머’에서 시인은 출생지인 상주 구병산을 소재로 산에 스민 자신의 고독한 실존을 탐색하고 있다.

강 시인은 “내가 어머니의 태몽 속 성난 멧돼지였던 구병산 어느 움막 속으로 들어가기에는, 지난 40년이 너무 멀고 낯설다 대구에서 3시간이면 구병산 날벼랑에 닿을 수 있겠지만 황간이나 영동 부근 어디쯤에서 나는 차를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강 시인은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고향 상주 구병산 자락에 있는 집을 찾아 꽃을 가구고 마당에 풀을 뽑는다.

그는 “분주한 일상에서 참된 자아를 상실했을 때, 제 집이 더 이상 제 집이 아님을 느낄 때, 고향이 낯설어질 때,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의 삶 속에 찬바람 불 때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는 잃어버린 고향이 먼 곳으로부터 눈을 뜬다. 현실의 결여가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추동하고, 먼 곳을 호명한다. 그러니까 먼 곳에 대한 동경은 사실상 삶이 진정 삶다웠던, 지금은 잃어버린 시원을 향한 갈망인 것이다”고 말한다. 이번 시집은 이런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일현,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

윤일현은 ‘낙동강’ 시인이다. 그의 등단작과 첫 시집 역시 낙동강이었다. 그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형상화하는데 힘을 집중하고 있다.

시인들은 그의 시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윤일현 시인의 낙동강 연작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맑은 서정의 옷을 입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한켠으로는 역사와 인간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다스리고 있다.(이태수)”, “그의 낙동강 연작은 강의 ‘흐름’을 중심으로 한 가족사와 이웃들의 삶의 표정을 물그림자처럼 아로새겨 순박하면서도 질박한 서정으로 감싸고 있다.(이하석). 그의 시는 맑은 서정성과 투철한 시대 의식이 가로세로로 치밀하게 얽짜여 있다(도종환).”

윤일현은 이번 시집을 내면서 마음이 한없이 착잡하다고 했다. 그는 “옛날의 강 풍경은 사라지고 없다. 낙동강 보 철거 문제를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강을 여러 번 죽여서는 안 된다. 정권과 이념을 초월해 생산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며 “어떤 경우든 강이 흐르게 해야 한다. 강은 언제나 자신의 속살로 우리를 품어 준다. 나는 강과 함께 살다가 강물과 함께 흘러간 사람들의 삶을 늘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삶에 가득했던 순박한 정서와 정직한 노동, 가족과 이웃을 위한 헌신과 희생, 타인을 향한 연민과 배려 같은 덕목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소중하고 필요하다. 강이 들려주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와 강이 내는 무거운 신음 소리에 우리가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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