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과 사막의 바람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경기 정점에 관한 논쟁이 일단락되었다. 지난 주말 국가통계위원회가 우리 경제의 경기순환 기준일을 결정한 것이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 경제가 지난 2017년 9월에 경기 정점을 찍은 후 최근까지 23개월 동안 경기가 하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은 2018년 들어 세계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되는 등 대외환경 악화에 따르는 국내 경기 위축이다. 충분히 이해할만하고, 이제는 우리 정부도 경기 둔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대응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안심도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결정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보여줬던 대응에 대해서도 왠지 모를 석연찮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선은 경기순환 기준일 설정을 3개월씩이나 미룬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연히 기술적으로 결론짓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3개월 전에도 현재의 경기상황과 미래의 경기 향방을 나타내는 많은 지표가 분명히 경기 하강이 지속됨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지표들이 지난 6월에 비해 더 안 좋아졌다.

혹시라도 그동안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가 경기순환 기준일 결정에 작용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기대가 아예 없었더라면 전혀 차원이 다른 경기대책이 나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보다 더 궁금한 것은 지금까지의 경기 흐름과 정책 사이에 과연 오비이락이라 할 만한 상황이 벌어졌을까 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감세, 그리고 친기업 정책 등 소위 성장 친화적인 정책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저임금과 법인세 및 금리 인상, 강력한 부동산시장 규제 등 최근 2년간 추진된 주요 정책들은 이와는 결이 다른 방향이었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여전히 실증적인 효과 분석이 미비해 그 영향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결정은 부동산발 금융시장 불안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법인세 인상조차도 우리 기업들이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사실은 적어도 1년 이상에 걸쳐 대다수 전문가가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는 점이고, 만약 시장의 경고가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제대로 적용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경기 둔화와 기존의 정책 방향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데, 아니 정부는 나름대로 잘 대처해왔는데 지금의 경기 흐름을 전부 정부 탓으로 돌린다고 마냥 억울해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국가통계위원회의 결정이 있던 날 OECD는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에서 0.3%p 낮춘 2.1%로 낮춰 발표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2.3%로 소폭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올해와 비교하면 약 10% 정도 늘어난 513조원대에 이르는 예산안을 책정한 우리 정부의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내수 경기 회복을 통해 경기 진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다.

이러한 전망이 그대로 실현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성장 친화적인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렇게만 된다면 정책 당국은 물론 국민 개개인의 처지에서도 다행한 일이다. 전자는 오비이락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행한 일이고, 후자는 경기 회복에 따르는 후생수준의 향상은 물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형성되어 다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우리 정부가 추진할 경기대책들이 아무쪼록 사막의 바람이 되어 우리에게 불어 닥치지 않길 바란다. 사막의 바람을 의미하는 지브리(Ghibli)가 사명인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작품이 방영되는 날이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일본의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요동쳤던 것처럼 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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