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에게 듣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류의 상승세가 눈부시다. 드라마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넉달 전에는 ‘기생충’이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K-POP은 그 이상이다. 특히 요즘 세계를 휩쓸고 있는 BTS, 방탄소년단의 기록 행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필자는 K-POP의 아이돌 스타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도 그랬다. 세계 진출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정도였다. 필자가 방탄소년단의 팬이 된 것은 노래나 춤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뜻밖에도 연설이 계기가 됐다.

2018년 9월24일이었으니까 꼭 1년 전이었다. 유니세프 행사가 열리던 UN본부 회의장이었다. 6명의 방탄소년들이 연단의 뒷줄에, RM 김남준이 마이크 앞에 섰다. 6분30초 가량의 짧은 영어 연설이었다.

주제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였다. 김남준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음악을 시작한 이후에 겪었던 방황과 좌절 이야기로 시작했다. “서울 근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9~10세 무렵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집어넣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잃게 됐습니다.” 그의 진솔한 얘기는 계속됐다.

“저는 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췄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저조차도 제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제 심장은 멈췄고 제 눈은 감겼습니다.” 슬픈 회고담이었다. 한국에서 자라는 청소년,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얘기였다. 개성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서 공부와 성적만 요구하는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의 문제와 위험을 이렇게 간명하게 짚어낸 말이나 글을 이전에 보지 못했다.

그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실천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내 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음악이라는 도피처가 있었습니다.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BTS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넘어서고야 만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그의 결론은 이랬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피부색은 무엇인지, 성 정체성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말하세요.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서 여러분의 이름을 찾고, 여러분의 목소리를 찾으세요.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세요.”

한마디로 기성의 틀과 고정관념과 억압에 무릎 꿇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누구의 삶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100% 공감한다. 그들의 그런 자세가 많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했고 지금의 성숙과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는다. 세계의 청(소)년들이 BTS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열광하는 것도, 획일화된 억압구조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BTS의 도전과 자신을 사랑하자는 호소에 공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설에 담긴 김남준의 메시지가 좋아서 찾아 듣게 된 BTS의 음악도 역시 좋았다. 억압과 편견과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에 대한 강렬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게 되었다. 음악과 춤의 창작 방식뿐만이 아니었다. ‘아미’라는 팬덤의 헌신적인 활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팬들과 방탄소년들과의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 역시 참신하고 창의적이다. 그것은 국경과 피부색과 언어를 뛰어넘어 지구적 연대를 만들어 냈다. 어디에 살든, 청(소)년들이 답답해하는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기성 질서를 함께 허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예술실험이요 ‘방탄현상’이라 봄직한 이유다.

그 모든 성취는 물론 BTS 소년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영혼을 깨우는 예술도, 사회를 바꿔내는 정치도, 소박하지만 가치있는 삶도 결국은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1년 전 오늘, 김남준이 세계를 향해 던진 화두를 빌려와 이 땅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Love yourself.)”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