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공원서 광복회 조직…국내, 만주서 활동||그의 동지와 가족 이야기도 함께 담아

대한광복회 우재룡

이성우 지음/선인/415쪽/3만8천 원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의 평전이 나왔다. 대구경북과 평생 깊은 인연을 맺은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두번의 무기징역 선고와 20년 가까운 감옥 생활을 하며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우재룡과 그의 동지, 가족들의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우재룡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독립운동가다. 한국근대사,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이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의 독립운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그는 한말 의병전쟁, 1910·20년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산남의진, 광복회, 주비단 활동이 그것이다.

우재룡은 구한말 군인으로 입대해 18세 때 대구진위대에 편입됐다. 1907년 한국군 군대 해산 조치가 내려지자 곧장 영천 보현산을 본거지로 하는 산남의진에 참여해 의병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동지들과 함께 ‘광복회’를 조직한다. ‘광복회’는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무장독립 운동단체다.

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경주에서 일제의 세금 운송 마차를 공격하고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제에 여러 차례 체포돼 사형을 구형받기도 한다. 두번째 투옥에서 그는 무려 17년간 옥고를 치른다. 30대에 체포돼 50대에 풀려난 것이다. 우 지사는 출옥 후 광복회 재건사업과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선양사업 등을 하다 71세를 일기로 운명한다.

책은 우재룡의 삶을 시간과 사건별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그는 국권을 침탈하고 있는 일제를 몰아내고, 대한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들고자 의병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친다. 책의 말미엔 우 지사가 옥고를 치를 동안, 또 서거 이후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도 보여준다.

또 1900년대 구한말 의병의 구국 항쟁에서부터 1955년 전쟁 직후까지의 정치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저자는 “우재룡은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묵묵히 자기에게 맡겨진 소임을 실천하는 독립운동가였다”며 “3·1운동 후 조직되는 주비단이나 광복 후 조직되는 재건광복회처럼, 자신이 실질적인 지도자 위치에 있던 경우에도 이러한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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