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9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진행||사진·부조조각 등 매체 다양화, 보도사진 이중



▲ 하태범 ‘Surface’
▲ 하태범 ‘Surface’


하태범 작가의 개인전 ‘White - facade’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하태범 작가는 세계 각지의 전쟁, 재난 참사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사진을 흰색 이미지로 재현해 매체의 속성과 대중의 수용적인 태도에 관한 사유를 유도하며 특유의 예술 세계를 선보인다.

작가는 독일 유학 초기에 만난 리비아 출신의 친구를 통해 중동지역의 분쟁, 테러 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White’ 연작은 시리아와 예맨 등의 중동지역은 물론 러시아와 조지아의 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테러, 재난 참상에 대한 보도사진을 예술적 모티브로 삼아 매우 세밀한 흰색 모형으로 재현해 다시 원본 보도사진과 같은 시점으로 재촬영하는 작업이다.

실제의 참상 보도사진에는 폭파된 건물들, 혼돈과 폐허로 점철된 환경,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과 폭력성이 얽히고 설켜 있지만 이를 대할 때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동화돼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과 심리적 거리감을 두며 안도감을 갖는 상반된 감정 상태에 놓이게 된다.

▲ 하태범 ‘Illusion’
▲ 하태범 ‘Illusion’


작가는 본래의 여러 가지 색이 전달하는 시각적 폭력성을 하얗게 탈색하고 구체적 요소들은 제거해 중립적 상태로 전환시킨다. 이는 참상 보도사진에 향하는 이러한 이중적 감정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그러한 처참한 현실에 대한 감정적 자극이 점점 무뎌지고 무신경해짐을 보여준다.

작가는 종이와 금속 재료를 커팅해서 제작한 이번 신작 ‘surface’와 ‘facade’ 시리즈를 통해서 재현된 실재로서의 ‘연극성’을 더욱 부각하고자 했다.

연극무대 장치는 과감한 생략과 삭제를 통해 현실적 상황을 암시할 수 있는 환경적 배경의 단편적 진수를 전면에 내세운다. 종이나 금속 면을 세밀하고 예리한 커팅 작업을 거쳐 3차원 부조 조각으로 재탄생시킨 파괴된 건축물의 파사드는 참사의 현장에서 파생된 상징적 진수, 즉 부수적 이미지를 제거하고 원본에 변형을 가한 허구적 실재로서 원본과는 상이한 하나의 확장된 시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작가는 또한 일관되게 지속하고 있는 ‘White’ 작업을 통해서 흰색 대상에 대한 순수 조형적 탐구를 실행하고 있다. 사실 흰색은 색이 아닌 색, 즉 무채색으로서의 백색 이미지는 오로지 하나의 유일한 백색으로 나타나는 것은 불가능하며 빛과 그림자의 작용에 의해 다양한 뉘앙스의 회색빛 색감으로 변질돼서야 비로소 명확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흰색 모형으로 제작한 후 사진으로 재촬영하는 작품의 경우 사진을 촬영하는 그 당시의 빛과 그림자의 조건에 따라 빛을 반사하는 곳은 순수 백색으로 나타나고 빛의 영향에서 제외된 곳은 점점 짙은 회색으로 보인다. 따라서 하태범의 작품은 빛과 그림자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커팅 방식을 사용한 이번 신작은 이러한 현재성이 더욱 두드러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흰색 부조로 표현된 건물들은 말 그대로 실시간의 인공조명, 채광 등에 의해 미묘하게 변화하는 현재의 빛의 작용에 따라 3차원성을 더욱 명확하게 하거나 희미해지게 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다. 문의: 053-424-2203.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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