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병과 백년대계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이제 11년만 지나면 케인즈가 ‘새로운 질병’이라며 기술적 실업 이야기를 꺼내든지 딱 100년이 된다. 1930년에 케인즈가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기술적 실업이란 노동 절약형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실업을 말한다. 새삼스럽게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몇 년간 한창이던 어떤 논란이 어느덧 사라져 버려 국가 백년대계인 인적자본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아서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고용시장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머지않아 국내 노동자의 7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스마트기계가 종업원보다 많은 회사가 절반을 넘게 되면서 실업이 급증하리라는 등 전형적인 기술적 실업에 의한 일자리 위기설을 자주 접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위기설은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기보다는 이제 4차 산업혁명에 뒤처져서는 국가의 명운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만약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 와중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으로 노동 절약 정도가 아니 노동 대체 정도가 상상보다 훨씬 빨라진다면 일자리 위기설은 언제든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의 과잉 노동력이 도시 혹은 공장 노동자로, 기술적 실업 상태에 있는 자들이 서비스 일자리로 빠르게 편입되면서 과도한 실업을 회피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이 없었다고 가정해보라. 산업혁명에 따르는 기계화로 실업과 저임금 하의 생활고를 겪던 노동자가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라 불리는 기계파괴운동을 벌이고, 정부가 이를 강압적으로 진압하는 등 19세기 초반 영국이 보여줬던 극심한 사회적 혼란 이상을 겪어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

다음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4차 산업혁명의 성공뿐 아니라 이를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인적자본의 육성과 활용이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토지나 원재료와 같은 자원, 장치와 설비 등의 자본, 표준화된 노동력을 경쟁기반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는 AI(인공지능)나 로봇, 정보, 데이터 등이 중요한 경쟁기반이고, 기업가정신은 물론이고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한 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한 인재들이 경쟁기반이 된다. 기술적 실업 회피를 위해서도 이제 과거와 같은 표준화된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과는 아쉽게도 작별을 고해야만 한다.

아마도 이 두 가지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ICT 최강국 중 하나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ICT 인재 중 고도한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관련 인재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과 중국에도 뒤지는 수준이고, 심지어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OECD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재투자국임에도 불구하고, 인재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교육시스템의 질이나 수학 및 과학 교육의 질 등은 상위권에 있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두뇌유출 정도도 높은 나라로 평가되어 인재활용에서도 주요국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뒤진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들이 다 해소된다고 해도 기술적 실업을 완전히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실업급여처럼 실업자를 위한 소득보호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소극적인 노동시장정책과 더불어 실업자의 재취업 등을 위한 다양한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의 도입에도 힘써야 한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개인의 고용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케인즈가 말했듯이 우리의 손자들이 새로운 질병에 감염되지 않고, 백년대계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바야흐로 지혜를 모을 때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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