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어그로’(aggro)를 끄는 사회

‘어그로’(aggro)를 끄는 사회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원래 게임용어에서 유래된 인터넷 은어 중에 ‘어그로(aggro)를 끈다’는 말이 있다. 눈길을 끌 만한 부정적인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을 내세워 관심을 모으는 것을 뜻한다. 영어 단어 aggravation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에서 펴낸 ‘게임사전’에 따르면 상대방을 도발하는 행위, 약오르게 하는 것 등의 뜻을 가졌다. 흔히 특별한 이유 없이 시비를 걸며 기분 나쁘게 도발하는 것을 ‘어그로를 끈다’고 표현한다.

원래 게임에서 쓰이는 ‘어그로’라는 말은 부정적인 게 아니었다. 다수의 플레이어가 함께 참여하는 역할 게임인 다중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 유래했다. 이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상대 캐릭터를 골라 집중 공격을 한다. 그러다가 또 다른 캐릭터가 갑자기 그를 공격하면서 성가시게 하면 몬스터는 공격방향을 그 캐릭터로 바꾸게 된다.

만약 몬스터의 공격이 우리 팀의 주력선수에게 향하면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 팀이 위기에 처한 이 때, 이렇다 할 공격 능력이 없으면서도 적을 도발하는 역할을 떠맡아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희생전략이 ‘어그로’이다. 결국 ‘어그로를 끈다’는 것은 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희생이다. 이런 게임용어가 인터넷을 통해 번지면서 현실세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도발하는 행동을 통해 관심을 끄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인터넷에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올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행위를 ‘어그로를 끈다’고 한다.

부정적인 이슈로 관심을 끌어 모은다는 의미에서 어그로는 ‘관종’과 별다를 바 없다. 관종이란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에 있는 ‘관심병 종자’를 줄인 말이다. 허세를 떨거나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게시물로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을 ‘관종’이라고 부른다.

하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돈이 되는 세상이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있는 유투브 등의 플랫폼에서는 구독자와 조회수가 수익과 직결된다. 이들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혐오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재생산을 반복하고 있다. 혐오가 ‘관종의 시대’에 가장 핫한 콘텐츠가 된 것이다.

EBS 방송의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놀란 적이 있다. 국내에서 연간 수입 톱9인 ‘1인 크리에이터’들의 수익이 최대 31억6천만 원, 최소가 6억1천만 원이라고 했다. 크리에이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많은 수가 혐오콘텐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크리에이터들은 조회수 어그로를 끄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갈수록 자극적인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려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유투버들이 혐오성 콘텐츠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면 정치인들은 막말과 망언 등 어그로성 콘텐츠를 확대재생산해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임에서는 이렇다 할 공격기술이 없으면서도 어그로를 끄는 것처럼 정치권에선 논리도, 설득력도 없지만 부정적인 이슈를 내세워 관심을 끌려고 한다.

정치인은 예외 없이 어그로이고 관종인 듯 하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관심만 끌 수 있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나아가 일부러 욕을 먹는 행동이나 막말도 서슴없이 해댄다. ‘악플’ 일지언정 ‘무플’보다 낫다고 보는 그들이다.

가히 어그로의 세상, 관종들의 세상이다. 유투버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로 조회수를 늘리고 광고를 끌어들여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 튀기 위해서 어그로를 끄는 행동이나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들여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표를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요즘 사회가 온통 진흙탕이다. 이 진흙탕 속에서도 어그로를 끄는 관종들의 관심은 하나다. 유명해지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서 혐오와 막말과 흑백논리와 차별을 부추기고 추종자들의 관심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혹시 우리는, 이들의 어그로에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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