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보는 남자/ 전윤호

위성도시로 가는 전철에서/ 손잡이에 매달려 내일자 조간을 읽는 남자/ 반을 접어도 옆사람과 부딪치는 정치면을 두 번 읽는 남자/ 아파트 분양공고 위에 땀방울을 떨구는 남자/ 최고 발행부수의 권위를 신뢰하고/ 독설이 강한 사설에 이마가 조금씩 벗겨지는 남자/ 선거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늘상 1번만 찍은 남자/ (중략)/ 네 컷짜리 만화보다도 볼 게 없는/ 어딘지 낯익은 남자

-시집『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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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세상의 현재를 스크린 하여 매일 우리에게 브리핑한다. 요즘은 매체의 다변화로 신문의 비중이 줄어들어 지하철에서 ‘신문 보는 남자’를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신문의 위력은 여전하며 세상물정을 속속들이 알려면 신문을 보아야 한다. 이번 조국 후보자 논란에서도 보듯이 방송에서는 이슈 중심으로만 다루지만 신문은 비교적 상세하게 이를 심층 보도한다. 문제는 세상을 지배하는 그 언론의 기사가 진실한가이며, 기득권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편에 복무하는가 하는 점이다.

신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사는 전통적으로 정치면이다. 한국인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무슨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거나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게임의 관전태도와도 같다. 일부 신문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자극적인 뉴스를 확대재생산하면서 자칫 국민을 호도하기도 한다. 며칠 전 조선일보 사설은 ‘최순실 전두환을 떠올리게 만든 조국 후보자와 가족들’이란 제목으로 조 후보자 일가를 ‘가족소송 사기단’으로 몰았다. 다른 것 다 떠나서 과거 전두환 정권 내내 용비어천가를 불러댄 곡학아세를 기억하는 국민으로서는 비애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사설이었다.

70년대 중반 모 관구헌병대에서 군 복무할 때 부대 내 최고의 꽃보직이 정보반의 정보 사병이었음을 기억한다. 그는 점호와 각종 훈련은 물론 심지어 단체기합에서도 열외였다. 주로 부대 주변에서 사식을 사다 먹으며 부대 식당에는 간간히 나타났다. 잠도 TV를 시청하면서 사무실 침대에서 잤다. 그의 주 업무는 국내에서 발간되는 모든 중앙지와 지역 신문들을 낱낱이 훑어 읽고서는 군 관련 기사를 스크린 하여 특이사항을 반장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부대 내에서 가장 자유롭고 할랑한 신분이라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도 맘껏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가 청와대에서 나와 잠시 백수 시절 페이스북에서 내게 친구신청을 해왔다. 나로서는 뜻밖의 ‘횡재’라 단박에 수락했다. 대수로울 것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미천한 내게까지 눈길이 미치고 친구신청을 해온 것인지 궁금했다. 그때 뇌리를 스친 게 바로 그 정보 사병이었다. 짐작컨대 청와대 민정비서실 내에도 그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있을 것이고, 지방신문에 연재하는 ‘시 칼럼’도 그 직원의 눈에 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페이스북의 글보다는 일부 마사지 되고 축약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내 글을 접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얼마 전 ‘죽창가’ 논란에도 김남주의 시에 그를 옹호하는 듯한 단상을 쓴 바 있다. 아무튼 지난번 ‘재산 사회 환원’ 기자회견에 이어 이번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히 고백한다”면서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고 사과한 부분은 ‘페친’으로서 일단 반가운 모습이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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