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엄격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핸들을 잡으면 인내심을 시험해야 할 때가 자주 있다. ‘저렇게 한가하게 운전할 거면 옆 차선으로 비켜주던지’ 하고 앞차에 책임을 전가하다가 이내 반성 모드로 바꾼다. 집에서 빈둥거리지 말고 5분만 일찍 나섰더라면 이렇게 초조하지 않을 텐데.

차선을 바꾸다 시비가 붙어 길에서 난투극을 벌이거나, 난폭한 끼어들기를 따지다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제주에서는 차선을 위험하게 변경했다고 따지는 운전자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마구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신이 저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대응을 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냥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TV를 보면서 나라면 무슨 사태로 발전했을지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흥분했다.

운전 중 상대와 시비가 생기는 것은 주로 차선변경이 원인이 되는 수가 많다. 방향지시등만 켜면 시비가 줄어들 텐데, 갑자기 끼어들어 불쾌감을 유발시키는가 하면 사고로 이어지는 아찔한 순간도 자주 마주친다. 보복운전은 명백한 범죄다. 대구에서 지난 한 해 동안 392건의 보복운전이 발생했다니, 사건화 되지 않아 통계에서 빠진 일상의 사소한 보복운전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인격수양이니 분노조절 장애니 한가하게 얘기할 계제가 아니다. 나부터 반성해야 하고 그와함께 도로 교통 환경도 고쳐져야 한다. 명색이 광역시라지만 도심을 벗어나면 2차선 도로의 한 쪽 차선은 아예 주차장이 된 지 오래다. 너무나 당연한 불법주차가 우리 운전수준을 넘어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8월부터는 소화전 5m 이내나 횡단보도와 교차로, 버스정류소 부근에 차를 세우면 주차위반 과태료가 8만원으로 2배 올랐다. 하긴 이런 곳에 차를 세울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놀랍다. 저마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사정이 급박하니 세울 것이지만, 그렇게 긴급한 사정이 이렇게 많이 생긴다면 그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닐 것이다. ‘나 혼자니까’ ‘잠시면 되니까’ 하면서 새우는 것이다. 놀라운 장면은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점령하게 되면 이런 운전 매너 이야기들이 사라질까. 자동차가 없던 시절,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었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국방력이 강하거나 경제력이 대단해서 주변국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예의를 지키는 품위 있는 국민들이었기에 이웃 나라 국민들을 교육하고 감화시켰던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벌어진 한일간 무역전쟁이 확전일로에 있다. 해법도 난무하고 있다. 소재와 부품의 독립으로 극일을 강조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경제를 이야기했다.

처음엔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면서 반일운동이 거세게 일더니 반 아베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극일운동으로 기세를 누그러뜨리면서도 일본 여행 안 가기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식어들 줄 모른다. “일본이 우리 국민성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이참에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일본을 가르치고 깨우쳐 줬다. 근세 들어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를 앞질렀지만. 최근의 ‘일본 이기기’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일본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평화경제만으로도 우리는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단순히 국민총생산이나 경제지표 같은 수치로 일본을 따라잡는다거나 이긴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과연 우리 앞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극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낼 역량이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도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우리가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보다 강해져야 하고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면서 발전하고 강해질 수는 없다. 개인이고 국가고 간에. 도로에서의 운전 에티켓도 그 중 하나다. 언론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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