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대가/ 마르틴 니묄러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1955초판)

........................................................

마르틴 니묄러(1892~1984) 목사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글이다. 루터교 목사인 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 국민들의 참회와 화해를 이끄는 대변자로서 활동했으나, 애초에는 반공산주의자인 히틀러의 지지자였으며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국가의 우월성을 종교처럼 맹신하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많은 개신교 성직자들이 나치의 위협에 무릎을 꿇은 가운데서도 그는 반 히틀러 독일 성직자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히틀러에 의해 체포된 그는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5년 연합군에 의해 풀려난다.

시적인 형식으로 전해져오는 이 글의 본디 제목은 ‘처음 그들이 왔을 때 First they came’이다. 나치가 특정집단을 하나씩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쟁취할 때, 저항하지 않고 침묵한 독일 지식인들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적극 동조하진 않았어도 무관심으로 방조했던 국민들을 함께 나무랐다. 1960년대 말 미국의 사회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져 전 세계에 알려졌는데, 정치적 무관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상호의존성과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자주 인용되었다. 최근까지도 진영 불문하고 패러디로 쓰이거나 문구가 추가되기도 한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때도 이 시가 인용되었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전 방위적으로 칼날을 겨눌 때도 이 시는 등장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시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종북주의를 척결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신공안정국의 발호’ 그리고 ‘그게 우리 밥 먹는 것과 무슨 상관있나’ 등 대체로 세 갈래로 나눴다. 대선 당시 이정희 후보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 자평하며 득의만만했다.

반면 당 해산 결정과 함께 의원직을 잃은 이상규 전 의원은 “통진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진보정당,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같은 야당,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한 국립대로스쿨 교수는 “통진당이야 어찌됐든 밥벌이나 잘 챙겨라” 통진당 해산 선고 판결문을 놓고 치열한 격론을 벌여야 마땅할 법학교수가 아무리 술자리라지만 학생들 앞에서 할 소리인지 두고두고 씁쓸했다.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는 그렇게 흐물흐물 넘어갔고 잊혀졌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고 최대의 현안이 되어버리면 민족주의 파쇼정치 세력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히틀러의 등장이 그러했듯 지금의 아베 정권도 군사강국을 도모하며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 인류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나 몰라라 방관한다면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