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면/ 김대중

잘있거라 내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몸은 비록 가지마는 마음은 두고 간다/ 이국땅 낯설어도 그대 위해 살리라// 이제가면 언제 올까 기약 없는 길이지만/ 반드시 돌아오리 새벽처럼 돌아오리/ 돌아와 종을 치리 자유종을 치리라// 잘있거라 내강산아 사랑하는 겨레여/ 믿음으로 굳게 뭉쳐 민주회복 이룩하자/ 사랑으로 굳게 뭉쳐 조국통일 이룩하자.

- 1982년 12월23일 미국행 출발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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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17일,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혐의로 신군부에 의해 연행된 김대중 선생은 광주항쟁의 배후조종자로 구속되어 1980년 9월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 사형수로서 4개월여 육군교도소 독방에 수감된 뒤, 무기수로 감형된 선생은 1982년 12월16일 석방될 때까지 청주교도소에서 한 달에 한번 가족에게만 봉함편지를 쓸 수 있었다. 이때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서신 29통을 모아 엮은 것이 ‘김대중 옥중서신’이란 책이다. 옥중서신에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시킨 흔적이 역력히 배어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온갖 수단에 꿋꿋하게 맞서는 한 인간의 놀라운 의지력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삶은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차가운 감옥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으며 분노와 억울함으로 시간을 보내도 시원찮을 그 시간에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와 공부로 미래를 준비하였다. 선생의 깊은 인류애에 뿌리를 둔 사상은 깊어갔으며 눈 밝은 통찰력으로 역사의식을 정립해갔다.

내용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 “돈, 권력, 명예는 하나다. 이 중 하나만 가지면 그것이 순환하여 돈이 되든 명예가 되든 권력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의 집중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경제민주화개념이 접목된 DJ 노믹스의 경제철학 가운데 하나다. 덧붙여 ‘사람은 가난하게 되지도 말고 지나치게 부유하게 되지도 말 일이다. 우리는 가난해도 부유해도 다 같이 돈의 노예가 된다. 알맞게 갖고 자유인이 될 일이다.’라고 하였다. 옥중에서 ‘쇼펜하우어’를 읽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정확하게 그의 생각과 일치한다.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늘 사람들을 탄복케 했다. 삶 자체가 한국 현대사이고, 삶의 궤적이 곧 우리의 정치사인 김대중 대통령께서 고난의 역사를 살다 가신지 10년이 흘렀다. 그의 인생 역정은 좌절과 희망, 투쟁과 피의 역사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그 자체였다. 숱한 고비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일관된 신념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런 선생이 딱 한번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쓰고 풀려났던 게 이 시를 쓰기 일주일 전 일이었다.

이 사실을 두고 말들이 있지만 선생이 살아서 반드시 자유의 종을 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였고 잡초와 같은 승부근성의 발휘였으리라 믿는다. 그 승부수로 억압의 시대에 희망의 빛이 되었고, 인동초의 삶이 민주회복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러나 남북이 하나가 되는 대업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평화와 화합을 바탕으로 한 대북 정책과 한반도 통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될 민족의 소명이다. 선생께서 다시 돌아와 우리들 답답한 가슴을 종매로 힘껏 쳐주길 소망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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