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일반

경주 최부자 300년 12대 만석꾼 9대 진사 비결 문서로 드러나

진급기, 과객도기, 식상기, 추수기, 과거 시험지 등 최부자 6훈 실천 증거서류 나와

1천600년대부터 12대 300여년간 만석꾼 부자로 9대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 고택 입구와 마당. 존경받는 최부자의 비밀을 보기 위해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경주 최부자집은 1천600년대부터 12대 300년간 9대 진사를 배출하고, 만석꾼을 유지하면서도 지금까지 훌륭한 평판을 받는 가문으로 손꼽혀 귀감이 되고 있다.

막연하게 이야기로 떠돌던 300년 최부자 전설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실천강령 6훈이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전해내려 왔던 6훈을 실천한 것을 증명하는 문서들이 최부자집 창고에서 최근 대거 발견됐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최

경주 최부자 고택 마당 사랑채 벽에 최부자와 교류했던 인사들의 엽서 등을 소개한 현수막.
부자의 비밀이 문서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최근 경주 최부자집 창고에서 발견된 이웃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고, 손님을 접대했던 내용을 기록한 문서들. 국내에서 최초로 집안의 과객도기가 발견됐다.


과객도기, 진급기, 식상기, 추수기, 과거 시험지 등의 회계장부격으로 집안의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문서들이 드러난 것은 전국에서도 처음이다. 역사를 실증하면서 300여년 전의 문화와 생활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로 등록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부자되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최부자는 3백년 착한부자의 전설”이라는 말이 우연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최부자집의 6훈은 공공연한 비밀로 일반에 모두 공개되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이웃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던 기록 부내면 구휼성책.


경주 최부자집 후손들이 과거에 응시했던 시험지 묶음. 9대까지 진사 벼슬을 했던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창고에서 9대까지 과거에 응시했던 시험지가 나왔다. 최부자 9대 진사라는 이야기가 증명되었다. 시험지들은 합격과 낙방 가리지 않고 50여매가 발견됐다.

최부자집은 12대를 내려오는 동안 9대 진사를 지낸 내용이 문서로 입증되었지만, 진사 이상의 벼슬에 나아간 기록이 없다. 지나친 권력에 대한 욕심을 경계해 현실적인 삶을 유지해 왔다.

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최창호 이사는 “진사 정도의 벼슬을 하면 양반으로서 사회적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높은 벼슬에 나아가면 재앙을 초래할 수 있어 부와 권세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을 교훈으로 삼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최부자집의 가훈을 실천한 곡식을 나누어 주어야할 사람들의 명단과 곡식을 나누어 준 장부 구휼성책.


-재물을 모으되 만석 이상은 하지 말라: 마을별 수확한 내용을 기록한 추수기를 통해 만석꾼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소작료를 받은 내용을 기록한 책도 250여권과 농계부까지 더하면 500여책의 문서들이 나왔다. 300여년에 걸친 최부자집의 추수 내용을 기록한 추수기는 10권짜리 20묶음이 있다.

지세조정 기록은 흉년에는 지세를 내리고, 풍년에는 다시 조정하는 탄력적으로 공생하는 지세를 운영한 것으로 보아 소작농과 윈윈하는 상생의 이치를 실천한 덕목이 엿보인다.

최부자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접대한 내용, 김생원, 이생원 등으로 점심과 저녁을 접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한 과객도기.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최부자댁에서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한꺼번에 200명 이상의 상을 차릴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매일 점심과 저녁에 손님에게 상을 차린 내용을 기록한 ‘과객도기’ 성책이 무더기로 나왔다. 식상기에서는 하루 점심과 저녁을 구분해 이름은 빼고 성을 ‘김생원’, ‘이생원’ 등으로 기록해 점심에 58명, 저녁에는 250여명에게 대접한 내용이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최부자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접대한 내용, 김생원, 이생원 등으로 점심과 저녁을 접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한 과객도기.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나라에서 할 일을 개인이 실천한 내용이다. 창고에서 나온 ‘기구성책’과 ‘진급기’는 곡식을 나누어 주어야 할 어려운 사람의 명부를 기록하고, 곡식을 배급한 내용을 낱낱이 적어두고 있다. 곡식을 지급하고 그 내용을 집계한 회계장부까지 근거로 남겼다.

최부자집의 구휼기는 기록뿐 아니라 굶주린 이들을 위해 음식과 곡식을 나눠 주었던 체험적 증거 ‘활인소’를 경주 내남에 재현해 두고 있다.

경주 최부자집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점심, 저녁 구분해서 김생원, 이생원 등으로 표기하고 대접했던 내용들을 기록해 둔 서식.


또 ‘구멍뒤주’로 구휼한 방식은 6.25전란까지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곡식을 넣어둔 상자 윗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어 한 줌 정도만 가져갈 수 있도록 제작해 예닐곱개를 대문 앞에 두어 계속 쌀을 보충해 굶는 이웃이 없도록 했다.

최창호 이사는 “최부자집이 300년 만석꾼 부자로 내려오면서 이웃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이를 증명하는 서류 뭉치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꼈다”면서 “선조들의 나눔을 실천했던 상생경영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빛을 발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덕행을 증명하는 기록들을 전문학자들을 통해 정확하게 번역하고 해석해 사회를 밝게 하려했던 최부자집의 교훈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부자집의 6훈(訓)은 앞서 6헌(憲)으로 불리며 집안 사람들이 반드시 법규처럼 지켜야할 가훈 이상의 의미를 가진 생활지침으로 대대로 교육되어 엄격하게 지켜져 내려왔다고 전한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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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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