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거울 앞에 서서

거울 앞에 서서/ 허홍구

치장하고 모양을 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기 저 거울 속에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놈/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언제 등 뒤에서 나타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도둑놈 얼굴의 나/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내가 무섭다//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

- 시집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북랜드, 2019)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많은 것을 본다. “뭐 아직 괜찮네, 그래도 이만하면 어디 가서 기죽을 정도는 아니지” 혹은 “이제 내 인생 종 쳤어, 이 주름들은 도대체 뭐람” 그럴지도 모른다. 외면의 얼굴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뿐 아니라 때로는 그 세월을 살아온 자신의 내면까지도 바라본다. 그리고 과연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기도 한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화상에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며 깜짝 놀란다.

페르시아에 구전되어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여인이 죽어 하늘나라에 올라갔다. 여인은 커다란 거울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거울 속에 매우 흉측한 얼굴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여인은 그 모습이 너무 추악해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흉악한 몰골을 본적이 없었다. 여인이 고함을 질렀다. “더럽고 흉악한 요귀처럼 생긴 여인아, 너는 도대체 누구냐?” 그러자 거울 속의 여인이 말했다. “나는 네가 세상에서 살았던 네 행위다!”

사람의 감추어진 행위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고, 죽어서도 따라다닌다. 미리미리 자신의 탐욕이 남을 해코지하거나 터무니없는 아집과 망상이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지 따위를 살펴보고 반성의 시간과 함께 자신을 가다듬는 것이 상책이다. 시인의 성찰은 이러한 묵직한 것들도 내포하고 있으나 시는 그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지수화풍의 변화 속에 ‘나이 일흔’을 넘겨서도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의 대책 없는 춘정을 고해한다.

사람은 아무리 늙어도 사랑하는 감정은 결코 녹슬거나 시들지 않는다. 그 사랑의 감각은 마음뿐 아니라 육체에도 새겨져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은교’ 하나쯤 품고 있을 수도 있다. 소설 ‘은교’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사랑은 시간의 눈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 당신들의 그것들도 미친, 변태적인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관능은 생로병사가 없는 모양이다.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미당은 일흔 중반에 한 고승을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스님, 언제쯤 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스님이 답했다. “나는 여든이 넘었는데 아직도 젊은 여성이 절을 찾아오면 마음이 설렙니다.” 달라이 라마도 일흔이 넘도록 여성을 보면 유혹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그 유혹과 욕정이 자기 안에서 다스려지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로 성자가 되기도 가정부를 건드린 어느 회장처럼 주책바가지 치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들지 않은 사랑과 낡아버린 능력 사이의 부조화를 겪으며 ‘下心’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제 오랜만에 허홍구 시인과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술도 한 잔 했다. 해학은 여전했고 철학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생각한 대로 잘 다듬으며 늙어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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