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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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황지우의 첫 시집 표제 작품으로 이렇게 요약된다. 영화관에서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새떼들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까지이고 ‘주저앉는다’를 끝으로 마무리 된다. 애국가 영상의 새처럼 자유로이 날고자하는 꿈은 있었겠으나 현실과의 괴리로 그만 체념하고 주저앉는데, 우리 슬픈 젊은 날 7~80년대 내내 그러했다. 유신정권이 몰락한 뒤 광주민주항쟁 등 그토록 처절한 저항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은 들어섰고 우리는 꼼짝 마라 부동자세를 강요받았다.

영화 시작 전 애국가를 상영한 것은 1971년 3월1일부터였다. “애국가의 올바른 보급과 존엄성, 애국심 고취를 위한 조치”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삼천리 화려 강산’을 담은 1분40초짜리 애국가 영상은 이후 20년간 국민의 일상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극장에서는 내키지 않아도 일어서야했고, 태극기와 더불어 애국가는 좋든 싫든 국민 의식에 침투되어 또렷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젊음과 자유도 함께 발목이 잡혔다가 1989년에야 폐지되었다.

애국가가 나오면 국기를 향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작 그만’ 바로 부동자세를 취하는 일은 극장 밖의 일상생활로도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땅따먹기나 줄넘기를 하다가도 애국가가 나오면 배터리 나간 자동인형처럼 동작을 멈췄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듯이 싸움질 하다가도 국기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들리면 차렷 자세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했다. 대한민국 전역은 오후 6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 국민이 1분 동안 일체의 동작을 멈춰야 했다. 조국에 충성을 다짐하는 일치된 국민의 모습을 보며 국가지상주의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 사상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식 행사나 정치 행사에서 애국가를 틀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다. 지난 7월19일 몽양선생 72주기 추모식에서는 애국가가 생략되었다. 이부영 이사장은 그 이유를 밝히며 순국선열의 추모식에 친일행적이 드러난 인사가 작곡한 애국가를 틀지 못하고 유보해야하는 입장이 편치는 않다고 했다. 그리고 8월8일 국회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공청회 개최가 예정되어있음을 알렸다.

그러니까 지난 8일의 공청회는 아베 경제보복 조치와 반일 감정의 확산과는 상관없이 진작 계획된 행사였다. 언론과 일부 정치평론가들의 “반일에 미친 민주당이 이제 갑자기 애국가까지 들고 나와 부르지 말자고 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이참에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기회로 삼자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신중론도 제기됐다. 통일 한국의 국가를 새로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그 전이라도 검토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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