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인공지능, 예술 분야에 도전하다

▲ AI가 음악 생성도 해내는 시대다. 인간은 음악을 감지하는데 주관적 감정을 싣는 반면 AI는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진동과 진폭, 음역 등을 데이터화 한 후 이를 배열해 음악을 창작해낸다.
▲ AI가 음악 생성도 해내는 시대다. 인간은 음악을 감지하는데 주관적 감정을 싣는 반면 AI는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진동과 진폭, 음역 등을 데이터화 한 후 이를 배열해 음악을 창작해낸다.
▲ 음악에도 AI와의 적절한 콜라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유수의 기획사와 스타트업이 최근 의기투합해 다소 독특한 주제의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 음악에도 AI와의 적절한 콜라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유수의 기획사와 스타트업이 최근 의기투합해 다소 독특한 주제의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 AI와 블록체인의 융합도 이채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술품 블록체인’의 이름으로 개설된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공동구매 방식이다.
▲ AI와 블록체인의 융합도 이채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술품 블록체인’의 이름으로 개설된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공동구매 방식이다.
▲ 최근 뉴욕 경매장에 한화가치로 5억 원 상당에 이르는 그림이 판매됐다. 그림은 AI의 기술력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 최근 뉴욕 경매장에 한화가치로 5억 원 상당에 이르는 그림이 판매됐다. 그림은 AI의 기술력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 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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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사후 재평가’라는 씁쓸함이 유독 예술인들 사이에서만 가혹히 투영된 듯하다. 자신의 귀를 잘라낸 ‘고흐’가 그러했고, 은박지에 시를 써내려간 ‘이상’ 역시도 ‘비운의 천재’라는 유쾌하지 않은 타이틀로 현재에 이르러서야 각광받고 있다.

사실 이번 연재는 유독 조심스러웠다. 인공지능(AI) 시대, 소위 ‘언터처블’로 부각되던 예술의 영역에 AI를 접목함이 혹 어불성설로 비춰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에서다. 신산업 창출과 잉여인간 양산이라는 AI 특유의 이항대립 속, 감성을 표출하는 예술의 영역이라 함은 성직자와 더불어 ‘불멸의 직업군’으로 분류된 것 또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직업적 자존감’이 선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의 영역’은 확고하다. 10만 내·외의 인공신경망과 수천억에 이를 인간의 뉴런은 사실상의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측은지심과 더불어 상생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야말로 인간 고유의 영역임은 그 어떤 혁명적 산업군이 휘몰아친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팩트’일 것임이 자명하다.

단지 예술과 AI의 접목을 통해 분업화 전략을 꾀하자는 것이다. 감성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되, AI의 섬세함이 감정에 깃듦에 따라 또 다른 예술적 가치 창출에 의의를 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번 연재의 방점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평가는 여러분의 몫이다.





◆머신러닝 기술로 학습을 하자

쉽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술과 AI라 함은 개별의 특성을 넘어 워낙 특출한 범주인지라 욱여넣는다고 쉬 접목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우선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영역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머신러닝’의 기술력이 투영돼 있다. 머신러닝은 AI 분야 중 하나로 인공신경망 기반의 ‘기계학습’으로 통칭된다. 특히 이미지 인식 분야를 훑어보면 단순 이미지 종류를 캐치해냄을 넘어, 이미지의 전반적 분위기와 이에 따른 문장 생성의 수준에까지 현재 이르렀다.

이 같은 기술력의 발전으로 렌더링 시간은 절감됨과 동시, 다각화된 장면은 머신러닝의 기술로 신속하되 한층 더 ‘리얼리티’한 구현이 가능해졌다. 과거 인간의 손을 빌려야 했던 요소들이 머신러닝과의 분업을 통해 정교함은 제고됨과 동시, 아티스트는 창의력에 집중하다보니 표현의 범주는 한 걸음 더 넓어지며, 아울러 깊어졌다는 해석이다.

다시 말해 예술과 AI의 조합을 아티스트와 컴퓨터 전문가의 상호 조력 정도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AI가 그린 그림이 5억 원?

최근 뉴욕 경매장에 한화가치로 5억 원 상당에 이르는 초상화가 판매됐다. 유명 작품들이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이곳 경매장에서 5억 원이 대수일까 싶지만, 되짚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초상화는 다름 아닌 AI의 기술력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작품의 출처는 파리의 한 예술단체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분리 신경망으로 구성된 ‘GNA 알고리즘’의 기술력이 깃들어 있다. 원리를 살펴보면 두 개의 신경망 중 하나는 이미지 생산의 역할을 하고, 또 하나는 생산된 이미지를 대상으로 식별해내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두는데, 생산자가 이미지를 생성해내면 식별 프로그램은 기존 그림과 생성 이미지의 싱크로율을 면밀히 분석, 최대치의 근사값을 도출 후, 이를 확인해 낸다.

이와 유사한 궤적으로 중세시대 풍의 초상화를 실시간 재현해내는 AI 기술력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선 재현을 원하는 이용자가 관련 이미지를 올려두면 알고리즘이 이미지 개별의 화풍 및 질감 등을 분석해 낸다.

이렇게 분석된 데이터를 토대로 화풍에 맞는 물감과 잉크 등을 취사 선택, 이후 올려진 이미지에 걸맞게 AI가 모방해 내는 기술력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AI 초상화를 모방이 아닌 ‘재창조’라고 일컫는다. 그도 그럴 것이 원본 이미지는 최대한 훼손치 않되, 작업 과정은 확연한 개별성이 있음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원 그림을 재해석한 ‘새로운 이미지 창출’이라는 풀이로 보면 된다.

얼마 전 개봉한 10분가량의 공상과학 영화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이른바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였는데 평범한 스토리였음에도 사람들의 평가는 극명했다. 다름 아닌 이 영화의 모티브가 AI 기술력으로 탄생한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간 특유의 섬세함은 부족했을 터, 스토리상 연계성 부족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 이면, 어찌됐건 인공지능 역시도 ‘창의’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일장일단의 고무적 성과에 주목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음악에도 AI와의 적절한 콜라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 유수의 기획사와 스타트업이 의기투합, 다소 독특한 주제의 음악이 최근 대중에게 선보였다.

여기에는 ‘반대개념’이 적용된다.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그 배경을 꾸미고 분위기를 설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배경 자체서 나오는 자연의 음향으로 공간을 채우는 작업. 다시 말해 바람 소리, 물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등을 마이크에 담아, ‘백그라운드 뮤직’이 아닌, ‘환경으로부터의 음향·음악’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위기 증강을 위한 ‘AR’의 기술력이 더불어 가미된다.

AI 개별로의 음악 생성도 가능해진 시대다. 물론 여기에는 인공지능 개발자와 아티스트의 콜라보가 전제돼야 한다. 인간은 음악을 감지하는데 주관적 감정을 싣는다. 반면 AI는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진동과 진폭, 음역 등을 데이터화한 후 이를 배열해 음악을 창작해낸다.

AI와 블록체인의 융합도 이채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술품 블록체인’의 이름으로 개설된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공동구매의 형식을 띤 투자 플랫폼이다. 여기서 AI는 예술품에 관한 다각적인 정보를 분석, 이를 빅데이터화 한 후 회원들로 하여금 각종 트렌드 등을 공유한다.





◆예술은 영원하다

장르부터 생소한 ‘개념미술’. 개념미술은 기존 예술에 투영된 관념을 배제한 채, 완성작보다는 완성을 위한 아이디어의 과정을 또 하나의 예술로 정의 내리는, 다시 말해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 도출을 위한 인고의 시간을 진정한 작품이라 여기는 다소 신개념의 아트 형식이다.

개념미술의 상징적 인물로 대변되는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 처음 전시됐을 때 작가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갖은 힐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여기서 샘이란 소변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뒤샹은 소변기를 떼어다가 그대로 전시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뒤샹에 따르면 예술은 작품이 아닌, 예술가 본연의 ‘생각과 가치’를 의미한다. 관람객의 니즈에 따라 예술적 벨류가 매겨짐은 어불성설, 예술가의 기술적 능력에 앞선 관념, 또한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야말로 예술을 평가하는 가늠자라는 것이다.

딥 러닝을 활용해 그려낸 ‘다빈치’의 그림. 이 그림은 AI가 다빈치의 화풍과 질감들을 면밀히 분석, 이를 빅데이터화 한 후 이에 따른 패턴으로 그림을 재조합, 또는 재창조해내는 기술력이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따져 창조의 영역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라고 ‘순수창작’의 범주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역시도 설왕설래를 거듭해야 할 넌센스 중 하나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다소 원론적 관용구는 차치하고라도 아티스트 역시 여타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감상, 습작해본 후에야 자신만의 화풍이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본연의 개성과 성질을 표출해가는 이른바 ‘모방의 과정’과 AI가 빅데이터를 통해 정규화된 패턴을 취득, 이를 토대로 적용 또는 재조합하는 방식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뫼비우스의 띠’처럼 접점 모색에 다다르기는 힘들지언정, 최소한 비슷한 궤의 수평은 이룬다는 점이다.

예술은 영원하다고 했다. 다만 AI와 예술의 조합을 단순 선명성 짙은 직업군에 대한 반발 정도로 여길 것만이 아닌, 조심스럽지만 또 하나의 예술적 장르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수차례 강조해보지만 어차피 인간을 위함이자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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