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지성은 진실을 말하는 용기

나라 전체가 당장 일본과 전쟁이라도 치를 기세다. 100여년 전 구한말의 지식인들이 이랬을까. 나라 안팎을 살펴보면 참으로 암울한데 정치인들을 보면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우국충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거푸 술잔을 비웠다. 이럴 때 조선의 선비 김굉필을 생각한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대니산 기슭의 도동서원은 김굉필의 정신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지난달 유네스코가 도동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렸다. 성리학의 시대적 가치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성리학의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치가 인정된다고 했다.

성리학, 지금 조선을 망하게 한 주범이라고도 하지만 세계사에서 500년 왕조도 그리 흔하지 않고 보면 그 긍정적 역할 또한 없지 않을 터다. 더구나 안팎으로 강대국의 침략 조짐이 상존하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상으로 보면 참으로 대견하기도 하다. 당파싸움으로 사화가 끊이지 않았으나 그 속에서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그 시대를 헤쳐 나왔다고 평가하는 역사가들도 있다.

성종 연산군의 시대. 여전히 세조의 왕위찬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림파들은 지배권력에 계속 잽을 날린다. 왕조의 정통성은 집권세력의 아킬레스였다. 왕자의 난과 계유정난이라는 왕위쟁탈전은 유교적 윤리에 정면으로 배치됐다. 사림파의 주장은 훈구파 중심의 국정운영에 대한 도전이었다.

결정적 한 방은 김굉필의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이라는 사초였다. 사림파들은 그전에도 남효온의 육인전이나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소릉 복원 주장으로 훈구파의 예민한 반응을 불러 온 터였다. 세조의 왕권에 대한 정통성과 그로 인해 생겨난 공신들에 대한 존재명분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그 중심에 김굉필이라는 도학자가 있었다. 소학, 참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지금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그야말로 물정 모르는 꼰대의 원형이라고 할 것이다. 삼강오륜이 국가보안법보다 무서웠고 모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능력과 역할이 남자에게 집중돼 있을 때였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를 규정짓는 가치가 있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세계관이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김굉필은 행동하는 지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고작 50년을 살았다. 늦게 관료사회에 나갔다. 그리고 훨씬 긴 시간을 유배지에서 보냈고 그리고는 끝내 목이 달아났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조선을 관통했다. 그 정신, 지도자라면 과연 그런 정신을 지녔어야 한다고 꼽을 수 있는 선비였다. 고작 정6품으로 있으면서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도덕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리고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김굉필은 보여주었다.

그는 특히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공자도 ‘교언영색선의인 (巧言令色鮮矣仁)’이라 하지 않았던가. 듣기 좋은 말, 상대의 환심을 사려는 교묘한 아첨의 말과 비위를 맞추는 번지르르한 얼굴색을 한 사람치고 어질고 착한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늘 말을 조심하라고 했고 자신도 그렇게 말과 행동을 삼갔다. 선현의 가르침을 말 뿐이 아니라 실천했던 선비였다. 그러니 스승 김종직이 이조참판이라는 벼슬자리에 있음에도 임금에게 바른 말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할 수 있는 것도 그였다. 이미 성균관 유생 시절에도 임금에게 직접 장문의 상소를 올렸던 그였다. 말 보다는 행동으로 몸소 실천했던 그의 정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했던 김굉필의 정신은 도동서원에 그대로 담겨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장히 어지럽다. 어느 쪽이 진실하고 어느 쪽이 국민을 속이려 드는가. 지성인이라면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런 날 김굉필을 생각하면서 도동서원을 찾는다. 유네스코에서 도동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이유가 그 번듯한 외형에만 있지 않음을 본다. 행동하는 지성, 책임지는 지성.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김굉필의 정신이 도동서원 기왓장마다 서까래마다 박혀 있기에.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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