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제1차 세계대전의 총성이 멈춘 뒤 독일 총리 베트만홀베크는 ‘아, 일이 이렇게 될 줄 진작 알았더라면’이라고 후회했다고 한다.

비교적 온건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그로서는 아마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 전쟁을 부추긴 것이 유럽은 물론 세계적인 참혹한 전쟁으로까지 비화할 줄 몰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후 배상금 지불을 위해 엄청난 양의 마르크화를 찍어내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와 대규모 실업으로 자국 경제를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할 줄도 몰랐을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 같다.

영국이 우방국까지는 아니어도 중립을 지킬 줄만 알았지 러시아와 더불어 프랑스 측에 서서 싸울지 몰랐었고, 미국이 적으로 참전할 줄도 몰랐었으며, 패배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영국이 적이 되어 나타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과거 독일이 경험한 것과 같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참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다름 아닌 최근 급변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행보가 그렇다는 얘기다.

우선, 일본 아베 내각의 태도다.

지금까지 양국은 과거사나 영토 문제 등 많은 갈등을 안고 있었으나, 정경분리원칙에 따라 경제만큼은 상호 호혜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의 신일본제철에 대한 한국인 강제징용배상 판결 후부터는 이러한 태도가 완연히 바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특정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에 이어 지난 주말 아예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이 정도까지의 경제 보복 조치는 이미 일본정부도 밝힌 바 있고, 우리도 그렇게 하리라고 예상했던 바다.

그래서인지 국내 금융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산업계 또한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놓인다.

반면에 미국의 태도 변화는 우리를 더 당황스럽게 한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분쟁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중재하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나라에 대해 WTO 농업 분야 개도국 혜택을 스스로 포

기할지 미국의 일방적인 개도국 대우 중단 조치를 당할지 양자택일하라고 압박에 나선 것

이다.

우리가 만약 이 혜택을 포기한다면 농산물 관세 인하는 물론이고 농업보조금 감축, 운송

및 물류 보조금의 즉시 철폐를 통해 농업 부문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뜩이나 미국이나 호주 등 농업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상태에 있는 농업은 그 기반마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비농산물도 관세 인하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는 10월 말까지 약 3개월

동안 미국과 협상의 여지가 남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잠재적인 리스크도 만만치 않은게 바로 중국이다.

당장 지난 사드 사태 때의 경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을 우리의 우방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로 넘어가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는 25%를, 무역수지는 550억 달러를 훨씬 넘는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중국의 변심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중국과 더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지금껏 우리의 우방이라 믿었던 미국과 일본도 태도를 바꾸는 데 중국이 변심하지 않으리

란 보장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태도에 화가 나고, 미국의 변심에는 섭섭하고, 중국은 믿을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 당장에는 그런 마음이 빨리 치유되면 좋겠다.

하지만, 편협한 애국심과 폐쇄적인 국수주의를 이용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군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현재가 과거와 다르기를 바란다면 과거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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