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저녁/ 김사인

고등계 형사 같은 어둠 내리네/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이 내리네/ 그러면 그렇지 이 나라에/ ‘요행은 없음’/ 명패를 붙이고 밤이 내리네// 유서대필 같은 비가 내리네/ 죽음의 굿판을 걷자고 바람이 불자/ 공안부 검사 같은 자정이 오네/ 최후진술 같은 안개 깔리고/ 코스모스 길고 여린 모가지 흔들리네/ 별은 뜨지 않네// 불가항력의 졸음은 오고/ 집요한 회유같이 졸음은 오고/ 피처럼 식은땀이 끈적거리네/ 슬프자, 실컷 슬퍼 버리자/ 지자, 차라리/ 이기지 말아버리자.

-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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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자, 실컷 슬퍼 버리자’ 어떤 슬픔이기에 이다지도 목이 멜까? ‘지자, 차라리 이기지 말아버리자’ 얼마나 짓밟혔으면 이렇게 바락바락 자조할 수 있을까? 아니 오기를 넘어 독기서린 말을 내뱉는 걸까. ‘고등계 형사 같은 어둠’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이 내리는 암울한 그 시절은 상상만으로도 소름 돋고 옴짝달싹못하는 절망의 시간들이었다. 지난 30일 화요일 밤 0시50분 아주 늦은 시간, EBS1에서 다큐 시네마 ‘1991, 봄’이 방영되었다.

1991년 5월8일, 한 젊은이의 분신자살 소식이 들렸다.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학교 캠퍼스 옥상에서 불에 탄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분신자살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여자 친구와 가족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며 미래를 꿈꾸던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김기설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 두 장의 필적이 숨진 아들의 글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가족이 제출한 김씨의 필적은 유서와는 많이 달랐다.

가족의 진술을 토대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였고, 주변인들의 필적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전민련 총무부장 27세 강기훈씨가 바로 그 유서를 쓴 장본인이라고 특정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유서대필’사건은 그렇게 탄생했다. 검찰은 김씨의 유서와 비슷해 보이는 필적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김씨의 지인 강기훈씨가 과거 경찰에 연행되었을 때 작성했던 진술서의 필적이었다. 검찰은 즉각 국과수에 두 문서의 필적감정을 의뢰했고 결과는 놀랍게도 필적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유서대필과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전무한 혐의로 강씨는 구속되었다.

강기훈씨는 법정에서 “다른 사람은 얘기를 못해도 저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조작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강씨의 유서대필사건이 보도되면서 그들의 지인과 관련 재야단체에서는 보관하고 있던 그들의 필적을 공개했다. 이후 사건의 행방은 점점 묘연해져갔다.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던 10명의 청춘들이 연이은 분신자살 등으로 스러졌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분신정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강대 박홍 총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고, 시인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기고 글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했다. 젊은이들의 분신자살은 배후세력이 선동한 죽음으로 탈바꿈되었다. 2015년 봄에야 강기훈은 최종 무죄가 된다. 누명을 벗기까지 24년이 걸렸다. 1991년 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인간의 존엄이 땅에 떨어진 가장 뼈아픈 대목 중 하나였으며, ‘요행 없음’의 시대였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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