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이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시집 ‘그 나라 하늘빛’ (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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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좋은 벗을 갖는 것은 인생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물길을 트고 강이 되어 깊고 맑게 흐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으랴.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는 소망이다. 그런 강물 같은 친구와의 지란지교는 삶 가운데서 어마어마한 의미이며 축복이다. 삶에서 최대의 행복이 사랑에서 비롯된다면 우정은 그 행복을 보다 빛나고 풍성하게 하리라.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이면서 오랫동안 변치 않는 친구를 현실에서 갖기란 녹록치 않다. 누군들 마음이 통하는 친구 몇쯤 어찌 없을까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로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처럼 은은히 흐르는 우정은 흔치 않으리라. 이러한 우정이 귀하디귀한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내가 설령 어떤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내 몰래 다른 곳에서 ‘뒷담화’를 즐기는 친구와는 강물 같은 우정을 이어가기 힘들다. 일찍이 파스칼도 ‘만일 친구가 남몰래 수군거리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이 비록 진지하게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고 하더라도 우정은 거의 유지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선의가 아닌 언제라도 악의적 경쟁관계로 돌변할 수 있는 친구와는 우정의 골을 깊이 파기 어렵다.

흔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 친구의 진가가 발휘된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벗의 곤경을 연민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벗의 성공을 내 일처럼 좋아하고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남다른 성정이 필요하다. 또한 벗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이므로 벗을 믿지 못함은 벗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란 말도 있다. 벗을 믿되 벗에게서 옳지 않은 일을 보거든 스스로 깨닫게 하여 고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며 그것이 우정을 위해 기울이는 최대의 노력이다. 내 삶을 리셋 할 수 있다면 꼭 내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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