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탐뎡

장수찬 지음/김영사/264쪽/1만4천900원

‘기록 덕후’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 선조들은 신분이나 지위,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수많은 기록문서와 책을 남겼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기록 유산으로 꼽히는 ‘조선왕족실록’에는 왕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겼고, 심지어는 ‘왕이 쓰지 말라 했다’는 내용까지 기록돼 있다. 양반사대부들은 유유자적하며 시와 그림을 남기거나 집안의 위세를 족보에 담았다. 평민들도 빠지지 않아서, 일기부터 차용증, 결혼·이혼 증명서, 심지어는 노비 매매문서에 이르기까지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글과 책에 담았다.

우리 고서들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해외로 반출되거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전쟁까지, 크고 작은 전란을 거치며 상당수가 소실됐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 스스로가 이런 고서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탓도 크다.

폐지상이나 고물상에 헐값으로 팔려간 문화재들도 적지 않다.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예전에는 비교적 흔했던 것들이 희귀해진 것이다. 현대에 들어 박물관이 생기고 옛 물건들이 문화재로 재조명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지만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으며 이리저리 흩어진 ‘옛 물건’들이 여전히 많다.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전문 수집가들은 이런 물건들을 찾아내고 그 가치를 밝혀, 소중한 우리 유물들이 사람들 곁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보관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은 고서 전문 수집가인 저자가 그동안 모았던 작품을 바탕으로 여러 고문서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이야기다. 저자의 감식안이 없었다면 독자에게 전해지지 못했을 스무 가지 생생한 역사·문화·예술 이야기가 담겼다. 또 고서 시장의 흥미로운 이야기도 공개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150만 원 가치가 있는 고문서인 조선 시대 서울 학생 성적표를 5천 원에 얻은 경험이 있다. 출품자가 보는 눈이 없어 헐값으로 나온 고문서가 오히려 값나가는 진품인 경우가 많다고. 4만 원에 구한 이름 없는 시집은 1852년 조선을 호령하던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한산 이씨 등 서울에 대를 이어 살아온 명문가 집안 자제들이 음풍농월(吟風弄月)하던 공동 시집이었다. 이 시집은 현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 외에도 저자가 소장한 한 고문서에는 아내의 행실 부족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내용 등 조선시대 부부의 이혼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영영 무상관 하는 뜻에서 수표를 만들고서는 돈 이백 냥을 주기로 허락한다’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위자료를 지급하며 혼인관계를 청산하는 모습은 현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흥미롭다.

보물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수집품을 사고 팔 때 원래 그만한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 물건을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보물이 되는 것이라고. 특히 고서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옛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이해할 때, 비로소 보물의 가치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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