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을 죽이다/ 전원책

당신이 살아있다는 소문은 어떻게 된 것인가/ 당신 집 빗장을 채울 때/ 세상 모든 빛을 가두면서/ 당신의 모든 행간은 숯과 소금으로 채워져/ 누구도 읽어내지 못한 당신 허물만으로/ 육신의 잠은 넘쳤다/ 혹 당신이 옹기 속 그 너른 대청에 앉아서도/ 눈과 귀를 열어 대중을 어르는 일에/ 무심하지 않았는지,/ 이제 빗장을 깨고 나와/ 내 벗은 몸을 실컷 보라고 호통친다는/ 이 즐거운 소문은 어떻게 된 것인가

- 시집『垂蓮의 집』(해와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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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되었으나 JTBC ‘썰전’을 재미있게 시청했었다. ‘썰전’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이 각각 출연해 시사이슈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정치예능프로이다. 2016년 1월 이철희 이준석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새로운 패널로 기용되면서 적잖은 관심을 끌었다. 당시 전 변호사는 상대에 대한 인물평 주문에 “나보다 머리 좋고, 나보다 잘생겼고, 나보다 젊고, 나보다 잘났고 기타 등등. 나보다 못한 게 없다”며 유 작가를 향한 폭풍칭찬을 늘어놓으면서도 “다만 보수 쪽에서는 정반대로 해석할 것”이라며 반전의 조크를 날렸다. 유시민 작가 역시 은근히 친밀감을 드러내 보였다.

과거 진중권 교수와 전원책 변호사가 한 TV프로에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오순도순 맞장을 뜨며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며 했던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며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전 변호사와 은유와 비유의 날선 독설로 유명한 진 교수가 그랬듯 유 작가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해 보기에 과히 나쁘지 않았다. 전 변호사의 토론 중 윽박지르며 흥분하는 모습의 바람직하지 못한 토론태도가 때로는 거슬렸고 어떤 발언에서는 ‘저 양반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썩 밉지는 않았다.

전 변호사는 기회주의자들로 득실득실한 보수 진영에서 드물게 공부가 되어있고 나름의 논리와 신념의 일관성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진보를 공격하다가도 잘못된 보수에 대한 질타도 아끼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의 영달을 우선시하는 일부 보수논객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논리적 억지가 그에게는 덜 했다. 그는 보수를 관통하는 기본정신이 기득권 옹호가 아니라 ‘자유’와 ‘책임’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 해 한국당 조강특위 위원이 되면서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이젠 TV에서도 거의 모습이 사라졌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머리는 우파지만 가슴 속은 좌파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어차피 모든 예술가는 진보적일 수밖에 없어요. 문인이 체제 비판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슴이 따뜻하기 때문이고요.” ‘썰전’이 없어진 이후 유일하게 챙겨보는 정치예능프로가 MBN의 '판도라‘였다. 보수 논객인 정두언 전 의원은 전 변호사보다도 훨씬 안정감 있고 균형감이 돋보였다. 정청래 전의원과의 ‘캐미’도 잘 맞았다.

물론 발언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으나 그만하면 보수의 한 축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야말로 어떤 측면에서는 자유주의 좌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제 빗장을 깨고 나와’ ‘내 벗은 몸을 실컷 보라’는 듯 매주 방송에 나와 정치발전을 위해 논객으로서 자신의 정견을 펼쳐왔는데, 더는 볼 수 없게 되어 더욱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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