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에서/ 김광규



3호선 교대역에서 2호선 전철을 갈아타려면 환승객들 북적대는 지하 통행로와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내려야 한다 바로 그 와중에서 그와 마주쳤다 반세기 만이었다 머리만 세었을 뿐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만



- 시집『하루 또 하루』(문학과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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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를 묶은 오래 전 시집 ‘낙법’을 읽고서 모 시인이 ‘김광규 시인의 화법과 매우 닮았다’며 전화에서 말했다. 어디 내 엉성한 시가 대가의 시와 비견될까만, 립서비스만이 아니라 굳이 비슷한 느낌으로 읽혀졌다면 생활 속의 현실체험을 쉽게 ‘일상 시’로 표현했다는 점일 것이다. 김광규 시인은 등단이후 그런 일상적 삶을 바탕으로 한 시의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온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인 ‘하루 또 하루’도 이제껏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에 대한 반성,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고 등의 내용들로 꽉 채워져 있다.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내적 비의가 깊숙이 담겨져, 오히려 시를 읽고 난 뒤에 묵직한 사유와 긴장을 유발한다. 시인 스스로는 “생활을 하듯 시를 쓰고 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생활에 대한 열린 태도로 삶에 밀착한 시를 가장 진솔하고 투명하게 써가고 있는 것이다. 독자에게는 같은 ‘하루 또 하루’를 살아가는 시인의 삶과 그 속에 담긴 통찰을 통해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 지난 삶을 반성케 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토록 한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곧이곧대로 옮긴 것도 얼마든지 시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단 그 삶과 현실을 직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꿈과 상상력으로 원을 그려 넣지 않으면 좋은 시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김광규 시인도 오래 전 그 원과 직선이 만나는 접점에서 시가 태어난다고 했다. 그 원은 때로 따뜻한 눈길이 되어야 하고, 자기반성이나 연민일 때도 있다. 덤덤한 무관심이나 돛대 같은 제 잘남 가운데서는 백번을 혼절해도 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 노선이고, ‘교대역’은 ‘강남역’ 다음으로 타고 내리는 이용률이 높은 역이다.

교대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인과의 구체적 관계는 잘 모르겠으나 학창시절 퍽 친밀했던, 개인의 삶에서는 엄청난 역사성을 지닌 친구였을 수도 있겠다. ‘반세기’만의 만남임에도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럼에도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 악수만 나누고’ 헤어져서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니, 그 대목에서 왼쪽 가슴이 아파오고 생의 한 무게 중심이 출렁 내려앉는다. 서울에서 아는 사람을 우연히 길에서 만날 확률은 높지 않으며, 오랜 옛 친구나 첫사랑을 만날 가능성은 더욱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비슷한 만남을 한두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시에서처럼 바쁘게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을 수도 있고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알은 척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반가운 사람일지라도 팍팍한 도회의 일상, 그 틀에 흔쾌히 끌어들이는 게 주저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재일우의 우연에 기대서라도 한번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긴 있다. 이미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소실점을 찍어버린 그때 그 사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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