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경제칼럼…집단사고의 부작용

집단사고의 부작용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가톨릭교회의 성인추대 심사에는 후보자가 성인으로 추대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집요하게 지적하기 위한 직책이 있다. 이 직책을 수행하는 담당자의 성격이 인간의 악덕을 신에게 이르는 악마와 같다고 하여 ‘악마의 대변인’이라 부른다. 생전에 아무리 성스러운 인물로 평가받더라도 성인으로 추대받기 전까지는 인간이고, 인간인 이상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더군다나 성인 또는 복자의 증거가 되는 기적도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성인 후보자까지 이를 정도면 어느 정도 팬덤현상을 경험했을 터이고, 이 과정에서 후보자의 치적이 과대평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은 악마의 대변인이 내 던지는 이러한 합리적인 의심을 모두 극복해야 진정한 성인 또는 복자로서의 영예로움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왜곡과 실패 가능성을 낮춰 대내외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의 국내 경제정책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도대체 그 많던 악마의 대변인은 어딜 갔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찬성할 때 의도적으로 반대의 견해를 취해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함으로써 토론을 활성화하거나 다른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하게끔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들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에 결정된 내부 의사에 대한 합리화에 급급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낙관론을 펼치거나, 매우 강한 도덕적 신념 등에 사로잡혀 외부의 다른 의견들을 무시하거나 그런 의견을 가진 자들을 배척하려는 집단사고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는 조직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함에 있어 책임 있는 의사결정 집단이 오만과 편견에 빠져 크게 잘못된 결정을 함으로써 조직을 위기로 몰아넣는 경향을 집단사고라 정의했다. 일본의 진주만공격 가능성에 대한 과소평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가능성에 대한 안일한 검토, 워터게이트사건 등이 그런 예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극히 예외적인 것들로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우리 경제나 사회가 이런 사례와 유사한 경험을 할 만한 지경에 도달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혀 표준적이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 관한 판단 또는 정책 의사결정들이야말로 대부분은 조직에 있어서 결정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문제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최근 회자되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설은 집단사고의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앞선다.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고자 하는데 기업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 환경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 이고, 숙박이나 교통 등의 분야에서 전지구적으로 퍼지고 있는 공유경제는 사회적 갈등으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시장에서는 갈등이 해소되어 사업화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불쑥 예상치도 못한 정책들이 거론되었다가 돌연 사라지니 놀란 가슴 쓸어내리기 일쑤다.

일각에서는 경기회복과 기업 사기진작을 위한 공직자들의 기업 현장 방문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심지어 사안에 따라서는 차마 믿기 어려우나 조직 차원에서 책임질 일(집단사고로 인한 실패)도 공직자 개개인의 탓으로 돌려지는 것 같은 안타까운 일도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어떤 공직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합리적인 정책들을 입안할 수 있을 것이며, 입안된 정책들은 또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얼마나 많은 유능한 인재가 신념을 가지고 공직사회의 문을 두드릴 것이며, 정부는 또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도 많다. 공직사회의 위기란 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좋은 환경보다는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물론 정부나 정책당국 등 공직사회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강렬한 비판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고, 이런 외부의 비판자들이 강력한 포식자인 메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있어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조직 집단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