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객원논설위원
▲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전국 이·통장에게 월 20만 원씩 지급하던 기본수당을 내년 1월부터 월 30만 원씩 지급한다. 이·통장들은 궂은일을 도맡아 수행하는 일선 행정의 말초신경이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새마을부녀회장에게도 이와 비슷한 정도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충분히 수긍한다. 새마을부녀회는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는 불우이웃의 수호천사다. 새마을부녀회 활동은 희생정신과 사명감이 없으면 도저히 견뎌내기 힘들다. 그런 까닭에 개인주의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젊은 피를 신입회원으로 수혈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이 같은 환경을 감안하면 새마을부녀회원 모두에게 활동수당을 지급한다 해도 반대할 명분은 없다. 다만 이 분들에게 섣불리 돈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

저소득 구직자, 폐업 자영업자 등에게 구직촉진수당을 월 50만 원씩 6개월간 지급한다는 말도 들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 외에도 돈을 주고 싶은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돈을 나눠줄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불우한 이웃을 보면 사람마다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측은하고 돕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배가 침몰되거나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하여 불행에 처한 사람들, 의지할 곳 없는 독거노인들, 기타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삶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일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나서야 할 과제다. 하지만 모든 과제를 마음먹은 대로 다 해결해줄 수 없다. 음지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외된 약자들은 더없이 많은 반면 그에 비해 활용가능한 자원은 절대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돈이 절대 부족하다. 국가와 사회는 이성적 방법으로 우선순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 순차적으로 대응해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반발과 부작용으로 온전히 버텨내기 힘들다. 시간을 갖고 큰 틀에서 국가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조망하고 숲과 나무를 함께 봐야 한다. 사심 없이 불편부당한 마스터플랜을 짜고, 현장의 합리적 타당성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나 즉흥적 착상으로 현금복지정책을 결정한다면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초래한다. 포퓰리즘과 감상적 이데올로기가 정치의 등에 업히는 날엔 나라를 망치는 일도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리스나 베네수엘라가 반면교사다.

공적 지원이 필요한 곳을 찾아내고 그런 곳에 현금을 나눠주는 정책은 때론 필요하고 타당하다. 그러나 선거를 불과 몇 개월 앞둔 시기에 현금을 살포하는 일은 정치적 오해를 유발한다. 배 밭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금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감한 시기의 현금살포는 단순한 오해로 끝나지 않고 매표라는 확신을 상대방에게 준다. 반칙이다. 일단 반칙에 길들여지게 되면 그 마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정쟁에 기름을 붓는다. 정권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힘들다. 반칙의 효과 내지 위력이 큰 만큼 어떤 집권세력이라도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일탈과 탈선은 그 시작이 힘들 뿐 일단 그 물꼬를 터면 걷잡을 수 없다.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매표는 국가와 사회를 망치는 마약이다.

인간은 수많은 결함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다. 선의만을 기대하기엔 너무 이기적이고 사악하다. 그래서 인간의 본능을 법으로 제어할 필요가 있다. 선거 전후 일정기간만이라도 현금복지를 금지하는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정책사업으로 예산을 세워 현금 복지를 집행하는 것이라도 선거 전후에 실시하는 것은 선거결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금지하여야 마땅하다. 공무원의 중립성도 해친다.

특정 범위의 사람에 대한 현금복지 공약도 일종의 사후 매표다. 예컨대 노인연금 인상, 청년수당 지급, 군인들의 급여 인상 등의 선거공약은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선거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금살포 약속으로 매표다. 개인의 현금살포는 위법이고 정부의 직무행위로 인한 현금복지는 예외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인 돈으로 매표하는 행위를 금해야 한다면 세금으로 매표하는 행위도 당연히 막아야 한다. 대부분 이성적 관점에서 포퓰리즘이나 매표를 반대하지만 그것을 막는 힘을 유권자에게 기대하긴 현실적으로 난망이다. 포퓰리즘이나 매표를 증오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온다면 거리낌 없이 표를 준다. 유권자가 이중 잣대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선거결과에서 매번 확인된다. 현금살포 효과는 직방이다. 매표를 유권자의 양심에 맡길 것이 아니라 법으로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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