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봉논설위원
▲ 홍석봉논설위원
지난 2002년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등진 코미디언 이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와 함께 코미디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이주일의 인사말에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과 설움이 응축된 자조의 말이기도 했다. 그는 본인조차 혐오했던 외모를 오히려 자신의 전매특허로 만들어 30여 년 동안 대중을 웃기고 울렸다.

이후 코미디계에는 속칭 ‘개성 있는’ 얼굴과 캐릭터를 무기로 대중적 인기를 끄는 코미디언들이 속출했다.

7전8기는 감동이 크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현역 시절 텍사스주 댈러스의 남부 감리교대학 졸업식에 참석, 2천여 명의 학생과 교수, 학부모들 앞에서 축사를 했다. 그는 축하의 말을 건넨 후 “나처럼 C 학점을 받은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해 폭소와 환호를 받았다. 이 축사는 모든 졸업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대표적인 실패 극복기다.

-주목받는 발상의 전환, 대리만족 느끼게 해

‘대프리카’로 상징되는 대구는 폭염도시다. 나쁜 이미지만 가득한 ‘폭염’을 상품화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 2008년 대구 수성구청은 더위를 상품화한 폭염축제를 기획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2008년 8월1일부터 3일간 대구 수성못과 들안길 일대에서 펼쳐진 폭염축제는 사흘 동안 50만 명의 대구 시민이 몰렸다. 이듬해는 80만 명이 찾았다. 그런데 2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폭염축제를 연 구청장이 낙선하고 새 구청장이 들어서면서 폭염축제는 끝났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의 희생양’이 됐던 것이다.

두고두고 폭염축제를 아쉬워하는 대구 시민들이 많다.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충분히 대구 대표축제가 됐을 터였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치맥 페스티벌’과 연계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냈을 것이 분명하다.

실패를 통해 인생을 배우자는 실패 박람회와 폭염과 미세먼지를 주제로 대구에서 ‘쿨 산업전’이 열리는 등 단점이 자산이 되는 시대다. ‘못난이 사과’ 등 못난이 마케팅도 관심을 끌고 있다.

역발상이 주목받는 시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고 다양성을 띠고 있다는 방증이다. 못난이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통해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시민의 다양한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재도전을 응원하는 2019 실패박람회가 지난 12일부터 사흘간 대구 동성로 일원에서 열렸다. 강원, 대전, 전주에 이어 네 번째다.

박람회는 실패 자산 콘퍼런스, 실패 공감 콘서트, 이불킥 공모전, 실패 토크 버스킹, 국민 숙의 토론회 등과 실패를 통해 인생에서 우뚝 선 저명인사의 특강도 있었다. 실패 경험의 공유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마련됐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영원한 낙오자

다음달 엑스코에서 열리는 ‘제1회 대한민국 국제쿨산업전’도 관심을 모은다. 폭염과 미세먼지에 선제 대응하고 대구를 기후변화 모범도시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클린로드, 쿨링포그, 쿨루프, 그늘막, 차열도료, 옥상녹화, 미세먼지 저감 관련 업체들이 참가하고 냉동냉방, 쿨 섬유 및 소재 관련업체들이 출품 예정이다. 다양한 소비재 기업의 제품도 선보인다.

못난이 농산물도 불황 탓에 인기다. 10여 년 전 경북도가 태풍으로 낙과 피해를 본 과수 농가를 위해 마련된 ‘못난이 사과’는 피해 농가 돕기 운동과 겹쳐 이목을 끌었다. 덜 익은 과일이나 출하 과정에서 생긴 흠집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이 마케팅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들어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를 난도질하고 있다. 오랜 악습 청산이 본래 취지지만 이것이 4대강 보 등 전 정권이 이뤄놓은 업적 파괴가 주 목적이 됐다. 전 정권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는 없나.

16일 새벽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한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준우승했다. 값진 성과다. 우승컵이 아니라도 좋다. 최선을 다했으면 후회는 없는 법이다. 기술과 체력적 열세를 뛰어넘어 세계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우리 청소년 축구대표팀에게 박수를 보낸다. 1등 만이 전부는 아니다. 실패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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