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꽃/ 김신용

‘만일 열무꽃을 보았다면 처녀 불알도 보았으리’*라는 글을 읽다가 깜짝 놀라는, 유월 아침이다/ 밭에 나가니, 하얀 열무꽃이/ 흰 꽃잎의 테두리에 엷은 보랏빛이 번져 있는, 조그만/ 열무꽃이, 섬광처럼 피어 있다// 열무는 ‘어린 무’여서 꽃이 필 수 없다는, 열무/ 만일 꽃이 피었다면 손에 장을 지질 일이라는, 열무꽃// 그 열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손가락만한, 어린 무처럼 생긴 빈약한 뿌리를 매달고/ 저리도 애잔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열무라는 채소의 종種이 따로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단순히, 어린 무라고 판단한 사전적 지식이 놓친 열무꽃을 보는 것은//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열무는 자신의 부드러움을 지우고/ 줄기에 질긴 심을 채우는, 열무의 생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쓰러워// 생각느니,/ 우리는 어린 열무의 잎과 줄기를 먹기 위해, 열무가 꽃을 피우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하지만/ 열무의 바램은, 자신의 부드러운 줄기에 질긴 심을 채워/ 꽃을 얻어/ 씨를 영글게 하는 것이거니// 보라,/ 열무라는 어감 속에 짙게 배어 있는 초록의 열망을, 그 강한 母胎를—.// 지금 밭에는, 장터에서 구해온 씨앗으로 심은 열무가, 꼿꼿이 꽃대를 세우고/ 조그마한, 찰나의 섬광 같은 꽃을 하얗게 피우고 있다. * 《시인수첩》창간호에 발표된 「詩詩非非」에서.

-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1년 7-8월호

.............................................................

여름이 제철인 십자화과의 채소 열무는 무보다는 잎을 식용하는데 주로 김치를 담아먹는다. 보리밥에 열무김치는 6월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하겠다. 영어 이름인 ‘young radish’가 ‘어린 무’를 뜻하듯 ‘열무’는 ‘어린 무’ ‘여린 무’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렇다면 ‘어린 무’가 꽃을 피울 리는 만무하다. 만약 꽃을 피웠다면 그것은 이미 ‘어린 무’가 아니거나 다른 종일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꽃이 피는 무는 ‘장다리무’뿐이다. ‘씨를 받기 위하여 장다리꽃이 피게 가꾼 무’가 ‘장다리무’이다. 씨를 받고 나면 그 무나 줄기와 잎은 소 떡심처럼 질기게 쇠서 소여물에나 넣어주는 게 보통이다. ‘장다리꽃’은 마치 유채꽃처럼 샛노랗다.

김달진 시인의 고향 진해에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열무꽃>이 시비로 새겨져있다. 그리운 고향의 정경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가끔 바람이 오면/ 뒤울안 열무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가난한 가족들은/ 베적삼에 땀을 씻으며/ 보리밥에 쑥갓쌈을 싸고 있었다./ 떨어지는 훼나무 꽃향기에 취해/ 늙은 암소는/ 긴 날을 졸리고 졸리고 있었다.” 그렇듯 열무는 ‘자신의 부드러운 줄기에 질긴 심을 채워/ 꽃을 얻어/ 씨를 영글게 하는 것이거니’ 번잡스런 세상으로부터 비켜나 모든 시름 다 잊고 오로지 유월의 햇빛 속에서 자연과 조응하는 모습이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야 열무에서 꽃이 핀다 하면 그런 줄 알 일이지, ‘처녀 불알’을 본 듯 화들짝 놀랄 것까지는 무어 있을까. 채소의 종이 다르다면 또 다른 줄 알고, 열무꽃이 흰색이라면 또 그런가보다 할 것이다. 다만 열무김치며 열무국수 따위 여름의 입맛을 돋우는 대표적인 여름음식이란 사실과 더불어 ‘찰나의 섬광 같은 꽃’의 그리움은 간직했음직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