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생각과 사이 / 김광규

생각과 사이 / 김광규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중략)/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중략)/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중략)/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 시집『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문학과지성사, 1979)

누구든 하나만 생각하고 둘을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 특히 고위공직자라면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하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꽉 막힌 청맹과니여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규범과 상식은 기본이다. 규범은 사회적 관습과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의미하며, 상식이란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의 이해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관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해 자세히 써 놓은 ‘목민심서’는 공무원의 필독서가 되어야할 것이다.

자신의 업무범위를 모르고 책임과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총리도 있었다. 과거 황교안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광진 의원이 우리나라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정확히 모르겠다’ ‘확인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국가대테러대책회의가 버젓이 존재하고 그 의장이 국무총리임에도 단 한 번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을 속히 통과시켜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고교 동문 고 노회찬 의원이 1989년 국보법위반으로 구속되었을 때 서울지검에서 검찰조사를 받는데 마침 황교안 검사 방이 바로 옆이었다. 조사가 끝나고 부르더니 잠시 수갑을 풀어주며 담배도 한 대 피우도록 했다. 그때 황교안 검사는 “구치소가 어떠냐?”고 물었다. 노회찬은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시설도 좋고 지낼 만 하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황 검사는 “그게 문제야, 구치소가 좀 춥고 해야 반성도 하지”라고 되받았다. 훗날 노 의원은 황 총리 인사청문회 때 “황 후보자는 총리로 전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그의 발언들을 가만 들어보면 그 말의 진정성이나 타당성은 차치하고라도 말마다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은 무얼까. 왠지 어색하고 몸에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사람은 자리가 높아질수록, 또 높은 자리를 도모할수록 그들이 받아야할 돌발 질문은 많아진다. 시내버스비가 얼마냐, 옥탑방을 아느냐 따위의 낡은 기출 문제에서부터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한류스타의 이름까지 다양하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고 싶다.

가령 신동엽을 아느냐, ‘껍데기는 가라’란 시에서 껍데기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서사시 ‘금강’은 어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담았느냐 따위. 지식 기반 사회의 주역이 스페셜리스트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전문성에만 함몰되면 다른 분야에 대한 포용력을 가로막아 균형 감각이 허물어진다. ‘사이’를 외면하면 소통이 안 되고, 불통이면 무지로 인한 폭력이 자행되기도 한다. ‘사이’를 허물어 통섭하고 융합하는 제너럴리스트의 덕목이 무엇보다 소중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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